과학기술선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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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지(李純之)
조선 초기에 자주적 역법을 이룩한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어떤 분이신가

이순지 영정

이순지(1406~1465)는 조선 태종 6년 서울에서 병조판서인 아버지 이맹상과 어머니 문화 유씨 사이에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정평(靖平)이며 본관은 양성(陽城)이다. 그는 5살 때까지 건강이 아주 좋지 못한 병약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다른 형제는 유모가 길렀지만, 그에게만은 어머니가 직접 젖을 먹이는 등 극진히 보살폈다고 전한다.

그의 나이 22세인 1427년(세종 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처음 4년 동안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과 문장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홍문관에 근무하였으나 서울의 위도가 얼마냐고 세종의 물음에 38도강이라고 답한 것이 후에 바른 대답인 것이 드러나며 왕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천문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1432년(세종 14년)부터 간의대의 관측 책임을 맡았으며 혼의와 혼상도 세웠다. 경회루 남쪽에 장영실이 설치한 자격루와 옥루에 대하여 김담, 김조, 이천 등과 협력하여 의상을 바로잡고, 간의, 규표, 천평현주,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천문관측에 전념하던 중 1436년에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을 지내려 하였으나 세종대왕의 특명으로 이듬해 벼슬을 더 높여 천문관측과 역산연구에 전념하게 되였다.

칠정산 내외편 첫 머리 부분

1442년(세종 24년)에 김담과 함께 착수한지 10년 만에 칠정산을 완성하여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한 역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듬해 김담 등과 함께 경기도 지방의 양전을 지휘 감독하여 세종으로부터 "최근 양전 사업에 만약 이순지, 김담과 같은 인재가 없었더라면 어찌 해 낼 수 있었겠는가"라는 칭찬을 들었다.

이순지는 1465년(세조 11년)에 60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남양주시 화도면 차산리 산 5-1번지에 위치한 묘소는 지방문화재 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마다 10월 둘째 주 일요일이면 양성이씨 후손들이 모여 그의 일생을 추모하고 있다.

이순지 선현의 과학기술 업적

첫째로, 이순지의 이름을 영원히 역사에 남게 만든 업적은 '칠정산'의 완성이다. '칠정산'이란 일곱 개의 움직이는 별 즉, 해와 달 및 5개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운동을 계산하는 기술을 완성해 놓은 책인데 여기에는 내편과 외편 두 가지가 있다. 내편이 중국의 전통적 계산법을 우리나라에 맞게 수정한 것인데 비해, 외편은 아라비아의 천문 계산법을 우리에 맞게 고쳐 놓은 것이다. 1442년에 완성된 '칠정산'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업적이다. 그전까지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역법이 없어서 해마다 연말이면 새 달력을 구하기 위하여 중국에 사신을 보내야 했던 현실에서 보면, 우리나라에 맞는 천문 계산법을 처음으로 완성하여 중국에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달력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가! 당시 우리나라 보다 일식을 먼저 예보할 정도의 천문학 수준을 이룩한 나라는 중국과 아랍뿐이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칠정산의 완성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주적인 천문학 체계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고 하겠다.

둘째로, 천문의기와 해시계 등의 제작에 이론가로서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순지가 죽은 다음날 세조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세종께서는 천문기구들을 교정하도록 이순지에게 맡겼다. 지금의 간의, 규표, 대평, 현주, 앙부 등과 보루각, 흠경각 등은 모두 이순지가 세종의 명을 받아 완성한 것이다." 이 모든 장치와 기구들을 이순지가 완성했다는 세조의 평가는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순지가 세종 때 만든 수많은 천문기구들을 제작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장영실 등의 과학기술자들이 천문기구들을 만들 수 있도록 이순지가 이론적인 지식을 제공하였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셋째로, 이순지는 천문기구들을 이론적으로 연구한 제가역상집과 당시 천문학을 가장 잘 정리한 천문유초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경오원력, 교식추보법, 교식통궤, 대통력일통궤, 선덕십년월오성능법, 오성통궤, 중수대명력, 태양통궤, 태음통궤 등의 천문학 관련서적을 저술하였다. 천문유초는 조선시대를 통하여 천문학 기본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순지 선현의 행적이 적힌 문헌

"세종실록" 권77(세종 19년 4월 20일, 기묘)에 이순지가 벼슬을 사양하는 상서를 올렸으나 윤허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세종실록" 권102(세종 25년 11월 17일, 무진)에 산학을 예습하게 할 방책을 세우려 집현전으로 하여금 역대 산학의 법을 상고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실록" 권36에 행 상호군 이순지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근래의 관련 문헌은 다음과 같다.

- 박성래 (1997). 세종의 과학과 천문. 어문연구 94호:27-36.
- 유경로 외(1973/4), 칠정산내외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
- 전용훈, 李純之(1406-1465)와 조선전기 천문학의 성격, 이달의 과학 기술 인물 세미나 3 (2004. 3. 27), 한국과학사학회

이순지 선현의 발자취를 찾아서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에 "양성이씨 대종회"가 있다. 이순지 선현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http://www.yangsung.or.kr/)

이순지 선현의 묘소는 부인 영월신씨와의 합장묘로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차산리 산5-1에 있다. 봉분 앞에는 묘비 2기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데 좌측은 그의 묘비이고, 우측은 부인의 것으로 모두 화관석과 비신이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984년 11월 20일 양성이씨 대종회에서 세운 320cm 정도의 신도비는 길가에 세워져 탐방이 용이하다.

국립서울과학관"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순지 선현의 영정 사진과 업적 관련 사진 및 모형품이 전시 되어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에는 세종대의 여러 천문관측의기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태음태양력과 우리 생활

태음력 또는 간단히 음력이라 하면 흔히 미신을 바탕으로 한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든 달력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음력은 옛날 우리의 실생활에 대단히 편리하도록 만든 달력이다. 음력 달력을 만드는 데는 두 개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즉, 달의 운행과 태양의 운행이다.

달의 운행

첫째,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거의 한달을 주기로 공전 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할 때 한달에 한번씩 달이 태양과 같은 방향에 오게 된다. 이 때를 합삭(合朔)이라 한다. 달이 합삭의 위치에서 다시 합삭의 위치에 되돌아오는 기간을 1 삭망월 또는 1 태음월이라 하여 음력의 한달이다. 1삭망월의 길이는 평균 29.5306일로서 29일 12시간 44분 정도이다. 따라서음력 한달의 길이는 29일 또는 30일이 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다른 달이 생기는가?

음력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정해야 되는 것이 음력 초하루 날짜와 음력의 큰 달과 작은 달을 정하는 것이다. 음력 초하루는 달이 합삭 위치에 오는 날로 정한다. 합삭일을 기준으로 음력 초하루를 정하고 이어서 초이틀, 초사흘, 초나흘 등의 순서로 정해 나가면 29일 또는 30일날 뒤에 어김없이 다시 음력 초하루가 온다. 이 때 29일이 되는 달은 작은 달이 되고 30일이 되는 달은 큰 달이 된다. 이렇게 합삭 시각을 결정하면 초하루와 음력의 대소가 정해진다. 따라서 음력의 큰 달과 작은 달은 미리 정할 수 없고 또한 그 배열의 규칙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태양은 일년 동안 황도상을 일주한다. 춘분점을 기준으로 황도를 따라서 15도 간격으로 나누면 24개의 위치가 나타난다. 태양이 그 각각의 위치를 통과하는 날이 24절기 또는 24기 일자이다.

즉, 순서대로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등이다. 이렇게 24기 날짜는 달의 운행과는 무관하고 태양이 황도 상에 어느 위치에 오는 날인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24기는 거의 양력 일자와 일치한다. 어긋나야 하루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다. 왜 그럴까?

일년 동안의 날짜를 배열해 놓고 초하루를 정하고 이어 음력의 대소를 정한다. 다음은 달의 명칭을 정해야 하는데 이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태양의 운행인 24기와 관련이 있다. 24기는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절기(節氣)와 중기(中氣)이다. 예를 들어 춘분은 중기, 다음에 오는 청명은 절기 등의 순서로 서로 교차하여 중기와 절기로 정한다. 이 때 24기를 날짜에 따라 배열하면 음력 한달 안에는 대개 1개의 중기와 1개의 절기가 들어온다. 이 때 음력 달에 들어오는 중기가 그 달의 명칭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중기인 춘분이 오는 달은 2월, 곡우는 3월, 소만은 4월, 하지는 5월, 대서는 6월, 처서는 7월, 추분은 8월, 상강은9월, 소설은 10월, 동지는 11월, 대한은 12월, 우수는 1월 등으로 결정된다.

왜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음력 달의 명칭을 정할까? 어떻게 음력의 윤달을 정하게 될까?

달의 모양을 보고 음력일자를 맞출 수 있을까?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 천문관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2005년 태음력 달력을 만들려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관측해서 무엇을 계산해서 알아야 할까?

(참고: 박명숙, 박승재, 이용복, "이순지(李純之)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 겨레를 빛낸 과학기술 선현 탐방집 3",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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