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선현 발자취

탐방 | 한마당

'소식' 웹진  |  탐방연구회  |  과학관연구회  |  자유게시판

홍대용(洪大容)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한 조선 후기 과학 사상가

홍대용(洪大容) 어떤 분이신가

홍대용

담헌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 마을에서 아버지 홍력(洪?)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에 첫 아들로 태어났다. 홍대용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남양홍씨 대종중 중앙종회. http://www.hong.or.kr/)

어렸을 때부터 약하지만 너댓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천자문, 소학, 사서 등의 책을 공부했으며, 당시 양반의 아들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과는 달리 홍대용은 벌써 열두 살 때에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겠다는 맹세를 했을 정도로 학문적 자각이 뛰어난 청소년이었다.

홍대용이 29세 되던 1759년에, 나주 목사였던 아버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기술자 나경적(羅景績)을 만나 함께 뜻을 모아 혼천의와 자명종을 제작하기로 하고, 그로부터 3년 후 1762년 두 대의 혼천의와 자명종을 만들게 되었다.

1765년 홍대용이 35세 때, 그의 작은 아버지 홍억(洪檍)이 중국으로 가는 사신 중 한사람으로 외교 문서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는 서장관이 되자 홍대용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 여행을 통하여 서양의 발달된 문물과 과학사상을 접하면서 천문, 지리,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을 쌓았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과학 사상을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1773년, 그의 나이 43세 때 자연 철학과 과학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의산문답(醫山問答)'과 수학, 천문, 측량도구에 대한 '주해수용(籌解需用)'을 저술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과학사상을 정립하였다.

그 후, 1774년 44세 때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하기 시작 하였는데,'현감이 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공무의 안건도 복잡하기만 하여, 본래의 계획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의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지내던 중 1783년 10월 22일 5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관련 탐방 장소와 전시물

홍대용 선현의 생가 터(충청남도 문화재 제349호)가 충남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646-1번지에 있다. 장산리에서 속창리로 통하는 병천 방향 도로변에는 홍대용 선현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101호)가 있으며, 천안 사거리 공원에는 홍대용 시비(詩碑)가 있다.

국립서울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는 홍대용의 업적을 소개하고 관련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의 "한국기독교박물관"(http://museum.ssu.ac.kr/)에는 홍대용이 만들었다는 혼천의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으며, 한문 본 "담헌연기"와 한글 본 "을병연행록" 10책 등이 있고 청나라 선비 엄성이 그렸다는 초상화 등이 보관되어 있다.

홍대용이 저술한 담헌서(湛軒書)는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규장각 등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국역 담헌서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행하였다.

홍대용 선현의 과학기술 업적

첫째, 자기 나름의 독특한 우주관을 제시하였다.

홍대용은 서양 과학을 적극 수용하여 지구와 우주의 구조에 대해 그 나름의 독창적인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우주를 무한한 공간으로 보고, 그 무한한 우주가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지구의 자전을 주장하였다. 지구는 둥글고,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 쏠리는 힘이 발생하게 되며, 이 힘이 둥근 지구위에서 사람들이 거꾸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를 상하지세(上下之勢)라 하였는데 오늘날의 중력과 비슷한 개념이라 하겠다. 또한 그는 무한한 우주 속에 지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지금 우리가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을 홍대용은 지계(地界)라고 부르며, 다른 항성 둘레에는 그것을 중심으로 한 행성계(行星界)가 있을 수 있다고 믿었고, 특히 다른 행성이나 달에도 그 조건에 맞는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하며 우주인(宇宙人)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었다.

둘째, 자신의 사상을 적은 천문학서와 수학서를 저술하였다.

담헌서(湛軒書)

홍대용은 "담헌서(湛軒書)" 내,외집에 각각 '의산문답'과 '주해수용'을 저술하여 실었다. 의산문답은 홍대용이 북경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에 저술한 책으로, 독창적인 과학사상이 잘 담겨있다. 주해수용은 수학의 원리와 적용, 측량 도구 등에 대해 쓴 수학책이다.

홍대용은 북경 여행을 통하여 서양의 발달한 과학을 실제로 접하고 "지금 서양의 과학은 산수(算數; 계산과 수학)에 근본을 두고 있고, 의기(儀器; 천문 관측 기구)로서 기준을 정한다"라고 하며 서양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수학과 관측의 우수성에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서양의 천문 지식을 이용한 천문 기기의 제작과 개발에 힘을 썼다.

혼천의의 일부

홍대용은 이미 20세 후반에 과학자 석당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를 제작하였고, 그 외에도 자명종과 더불어 혼상의(渾象儀; 일종의 천구의), 그리고 천체 관측 기구인 측관의(測管儀), 구고의(句股儀) 등의 다양한 의기들을 제작하고 이를 자신의 사설 천문 관측소인 농수각(籠?閣)에 설치하였다. 북경 여행을 통하여 서양 과학의 발달이 수학과 관측기구의 우수성에 있다고 본 홍대용은 과학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관찰과 실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과학 기구의 제작과 이용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우선 천문 의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관측기구들을 실제로 제작하여 농수각에 설치하고 천문을 관측하는데 이용하였다. 특히 이 곳에 설치한 혼천의는 기계시계를 톱니로 연결하여 움직이도록 한 것으로 이전까지 물을 사용하던 혼천의와는 달리 기계 혼천의로 개량된 것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홍대용의 의산문답(醫山問答)

홍대용이 1773년 북경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그 곳에서의 경험과 자신의 사상을 토대로 집필한 일종의 자연 과학 도서인 의산문답에서 홍대용은 실옹(實翁)과 허자(虛子)라는 두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이들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과학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 허자와 실옹은 전통 유교의 성리학과 근대적인 서양과학 사이에 서 있는 실제 홍대용 자신의 두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다.

내용에는 인류의 기원, 계급과 국가의 형성, 법률, 제도 등에서부터 천문, 역법, 산술, 지질 등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실었는데 특히 이 책에서 홍대용은 지구 지전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구가 왜 둥근지, 어떻게 이런 둥근 지구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지 등을 밝히고 있으며, 우주가 무한한 공간이라는 것 외에도 지진, 온천, 밀물과 썰물 등에 대한 의견도 말하고 있으며, 생명의 시작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서양 근대 과학의 객관성과 상대성을 받아들인 홍대용은 의산문답 역시 상대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자연물에 절대적인 중심이 없는 것처럼, 인간 세상에도 절대적인 중심은 없는 것이므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의산문답의 내용 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허자(虛子) :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은 원형(圓形)이고, 땅은 방형(方形)이다'라고 하였는데, 선생께서는 왜 땅이 둥글다고 하십니까?
▶실옹(實翁) :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다. 너의 우둔함이여! 온갖 물체의 형체가 다 둥글고 모난 것이 없는데 하물며 땅이랴! ... 달이 해를 가려서 일식이 될 때 일식된 부분이 반드시 둥근 것은 달의 형체가 둥글기 때문이고, 땅덩어리가 해를 가려서 월식이 될 때 월식된 부분이 또한 둥근 것은 땅덩어리의 형체가 둥글기 때문이다. 그런즉 월식은 곧 땅덩어리의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덩어리가 둥근지를 모르는 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춰보고도 자기 모습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어리석지 아니한가. ...
▷허자 : (강과 바닷물. 사람과 물(物)들이 둥근 땅덩어리의) 옆으로나 거꾸로는 살지 못하니 아래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실옹 : 그렇다면 사람과 물(物) 같은 미물(微物)도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는데, 어찌하여 이 무거운 땅덩어리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가? ... 무릇 넓고 큰 태허(太虛)는 육합(六合, 즉 천지사방을 말함)의 구분이 없는데, 어찌 상하지세(上下之勢)가 있겠는가. 대저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떠올라도 위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내려와도 부서지지 아니하고, 허공에 달려 영구히 머물러 있으니, 태허에는 상하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 대저 땅덩어리는 하루에 한 바퀴를 도는데, 땅덩어리의 둘레는 9만리(萬里)나 된다. 이 큰 땅덩어리가 12시간(하루)에 맞추어 움직이고 보면, 그 돌아가는 속도는 번개나 포탄보다 빠르다. 땅덩어리가 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니, 허(虛)와 기(氣)가 급격히 소용돌이쳐서 공중에서 막히고 땅에서 한데 모여, 이에 상하의 세(勢)가 있게 되는데, 이것이 곧 지면의 세력[地面之勢, 일종의 중력 개념]이라고 한다. 땅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이 세가 자연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고, 호박(琥珀)이 티끌을 끌어당기듯이 본류(本類: 같은 종류를 말함)끼리 서로 감응되는 것은 물(物)의 이치이다. ...

(참고: 겨레를 밝힌 과학기술 선현 탐방집 5: 홍대용(洪大容)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5.)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