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선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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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許浚)
한의학의 전통을 우뚝 세운 학자이며 의술을 널리 편 명의원

허준 어떤 분이신가

허준 선현 영정
(한독의약사료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으며 원천을 캐지 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이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라고 "동의보감"에 의미 깊게 언급한 허준(許浚) 선현은 용천 부사를 지낸 허론의 서자로 1539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권세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를 보면, 허준이 '노자', '조화론' 등의 책을 유희춘에게 선물하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질병도 돌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허준이 의술에 뛰어남을 알고 있던 유희춘이 1569년(선조 2년)에 허준을 조선시대 궁궐 안에 있는 의원에 천거하는 편지를 이조판서에게 보냈다. 그래서 허준은 33세 때, 관직인 내의원 종4품 첨정에 이르게 되었다. 첨정은 내의원의 고위 행정직 제2위의 자리로 지금과 비교한다면, 보건복지부의 서기관(과장급) 이상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허준은 왕명을 받아 1581년에 첫 책인 "찬도방론맥결집성"의 교정을 완수하였다. 이 책은 조선초기부터 진맥학 학습의 기본 교재로 활용되어 온 것인데, 잘못된 점이 많아서 선조가 교정 작업을 명한 것이었다.

당시 천연두 병에 걸린 왕자(이후 광해군)에 대해 "약을 써서는 안 된다."는 미신이 강하게 퍼져 있어서 어의 중 그 누구도 왕자의 질병을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으나, 허준이 나서서 병을 고쳤다. 그리하여 정3품 당상관 벼슬을 얻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다른 왕자와 공주 그리고 민간의 천연두 병을 많이 고쳐서 "천연두 병의 명의"가 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다른 신하들과 관리들은 핑계를 대며 왕을 보호하지 않았지만 허준은 의주까지의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 하며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 공으로 종1품 숭록대부가 되었는데, 의관으로서 종1품에 오른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또한 왕의 병세를 회복시킨 공으로 허준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리려 했으나 "신분 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이라며 사헌부와 사간원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선조는 어쩔 수없이 취소하였다.

총책임자로서 허준은 1596년에 유의 정작, 어의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함께 "동의보감" 책의 편집을 시작하였다. 1607년에 선조가 병으로 죽자 당시의 수의였던 허준은 그로 인해 의주로 유배당하였는데, 수의로 일하느라 절반도 쓰지 못했던 "동의보감"을 유배당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다. 선조가 죽은 후 왕이 된 광해군이 허준을 귀양살이에서 풀어주었다. 1610년(광해군 2년) 72세 되던 해, 드디어 허준은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바쳤다. 허준은 "동쪽 지방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는 뜻"의 동의(東醫)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75세 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던 "동의보감"이 훈련도감본 목활자로 발간되었다.

이 해에 크게 유행한 온병에 대비하기 위해 허준은 "신찬벽온방"을 지었고, 당독역(성홍열)의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 "벽역신방"을 편찬하였는데, 이책에서 보인 허준의 성홍열 관찰은 세계질병사상 가장 이르면서도 정확한 기록 중 하나로 평가되는 것이다.

허준은 1615년(광해군 7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 광해군은 그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였다.

한의학 관련 주요 업적 및 영향

첫째로 허준 선현은 조선 의학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동의보감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7가지의 한의학서를 쓰고 한의술을 편 허준 선현은 조선시대의 모범적인 한의학자이자 명의원이었다. 후대의 많은 조선 의학자들 은 허준의 의학서로 공부를 시작했다. 또 그가 정리한 "찬도방론맥결집성"은 이후 조선시대 내내 의과 시험의 교재로 활용되어 의학 초보자 학습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한글로 쓴 "언해구급방", "언해태산집요" 등은 민간에서 가장 시급하고 요긴한 기본 의학 지식을 제공 하는 원천이 되었다. "동의보감"이 고급 의학으로서 높은 수준의 의학서라면, 이것은 낮은 수준에서 의학을 손쉽게 배우고 의료를 널리 확산시키게 한 대중의학서라 하겠다.

둘째는 동아시아 의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동의보감"은 출간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려서 중국 의서 가운데에서도 "동의보감"과 성격이 비슷한 종합의서로서 이 보다 많이 출판한 책은 불과 몇 종에 불과하다. 이렇게 널리 읽힌 것은 "동의보감"에서 이룩한 의학적 성취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갈래로 흩어져 내려온 양생의 전통과 의학의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종합하였다. 병의 치료와 예방하고 건강도모를 같은 수준에서 헤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병의 증상, 진단, 예후, 예방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냈다. 중국 의학 책 중에서 이 만큼 이런 내용이 잘 갖춰진 책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한의학 전통의 핵심을 매우 잘 잡아냈다는 점이다. 허준은 방대한 한의학 전통에서 2천여 가지의 증상, 7백종 남짓의 약물, 4천여 가지의 처방, 수 백 가지의 양생법과 침구법을 제시했다. 또한, 허준은 자신의 뛰어난 편집 방식과 임상 경험으로 그것을 엮어내어 자신의 "동의보감"을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주목받는 책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셋째는 세계 질병 역사에 기여하였다.

허준은 성홍열 연구를 통해서 매우 면밀한 관찰 결과를 보고했는데, 그것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었다. 허준은 천연두, 수두, 홍역, 성홍열 등의 유사질병을 구별하여 하나의 '전염병학'을 세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간에 만연하는 무서운 역병에 대해 그 시대를 사는 의학자로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하겠다. 그 바탕에는 60여 년 동안 허준 개인이 이룬 의학적 식견과 경험이 깔려 있었다. 그가 성홍열 연구에서 보인 예리한 관찰은 당시 세계의학계의 최고수준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것이었다.

넷째는 한의학과 궁궐 의술 뿐 아니라 민간 의술과 한의학교육에도 공헌하였다.

"동의보감"으로 허준은 조선의학계의 으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이 의원들에게 고급 지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데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허준은 아기를 낳거나 산모를 관리하는 일, 의원이 없거나 의원을 부를 틈이 없을 때 벌어지는 온갖 응급상황에 대한 처치,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가정상비약의 마련 등이라는 측면에서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 백성들을 위한 지침을 한글로 저술하여 널리 보급했다.

또한, 의학을 처음 배우는 생도들이 의학의 핵심인 진맥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올바른 진맥 교범을 낸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는 조선사회에 만연했던 천연두, 성홍열, 티푸스 등의 전염병을 이겨내려는 의학적 노력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천연두의 경우에는 민간의 강한 금기에 도전하는 불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허준 선현 관련 탐방지와 행사

허준 선현의 묘지

구암공원에 있는 허준 선현의 동상

선현의 묘소(기념물 제128호)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 산 129번지 임진강변에 있다. 재미 고문서 연구가 '이양재'씨가 1982년 허준의 친필편지를 구하고 부터 그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9년여에 걸친 추적 끝에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91년 9월 27일 임진강북변 민통선지역 내에서"양천허씨족보에 기록된 "진동면 하포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내용과 흡사한 묘를 발견하였다. 묘소에는 묘비(墓碑), 문인석(文人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원래의 묘비는 두 쪽으로 파손되어 땅속에 매몰되어 있었다. 발굴 당시 묘비의 마모된 비문 가운데"양평(군) (호)성공신 (허)준 (陽平(君) (扈)聖功臣 (許)浚)"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허준 선현의 묘인 것이 확인되었다.

국립서울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허준 선현

"국립서울과학관" 4층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마련되어있다. 이 전당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우리 과학기술인의 발자취를 소개하고 항구적으로 전시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전당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용천 부사를 지낸 허론의 서자로 태어난 허준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경전과 역사에 밝고, 특히 의학에 뛰어났다'고 한다. 외가쪽 친척으로 의학에 밝았던 김안국, 김정국이 있었다. 30대 초반 유희춘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간 그는 종4품 첨정(僉正)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임진왜란때 의주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보필한 공로로 3등 공신이 되어 양평군(陽平君) 작위를 받고 종1품 숭록대부에 오른다. 의사로서 이런 지위에 오른 경우는 역사상 허준이 최초이다. 1606년 선조의 병을 회복시킨 공로로 정1품 보국숭록대부가 될 수 있었으나 사간원과 사헌부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선조가 죽자 치료를 잘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기도 한다. 이후 광해군은 그를 복권시키고 사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http://hall.ksf.or.kr/ani_flash/swf/ani_05.swf (허준 선현의 애니메이션)

한독의약사료실

1964년에 한독약품 창립 10주년 기념사업으로 김신권(金信權) 대표이사가 수집한 소장 유물을 출연해, 서울특별시 중랑구 상봉동 한독약품(주) 내에 한독약사관(韓獨藥史館)을 설립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기업박물관이자 의약박물관이 태동했다. 1974년 새 건물을 짓고 한독의약박물관으로 개칭했으며, 1995년에 충청북도 음성군에 전시관을 신축하여 박물관을 옮겼다. 한국관 · 국제관 · 한독사료실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야외에는 약초원이 있는데, 단일품목 유물로 가장 많은 것은 4,000여 점의 고의서류(古醫書類)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하여 언해태산집요(보물 제 1088호), 찬도방론맥결집성(보물 제1111호)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대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池錫永)선현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구암공원과 구암(허준)축제

허준 선현의 호를 새긴 바위

서울시 강서구 가양 2동에는 허준을 기려 그의 호를 딴 "구암공원"이 있다. 주변에는 전설과 유적지가 많은데 탑산에는 공암층탑과 소요정이 있었다고 한다. 공원의 서문을 나서면"공암나루터"와 양천 허씨의 시조 동굴이라고 하는 "허가바위"가 있다. 구암공원 호수 북쪽 언덕에는 허준 선현이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의 동상을 건립하였다. 구암공원의 서남쪽에 허준기념관과 한의학연구소가 건립되고 있다.

구암공원에서는 허준 선현을 기념하는"구암(허준)축제"를 통하여 이 지역을 한의학의 테마관광지·한의학치유단지 및 국가적인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동양의학의 성지(聖地)로 가꾸어 향후 강서구를 전세계 "한의학의 메카"로 조성키 위해 1999년부터 매년 "구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 2004년에는 구암축제가 10월 16일 경으로 예정되어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와 강서구 한의사회 및 양천허씨 대종회, 강서문화원 등 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옛 궁중의식을 재현하는 동의보감진서의(마당놀이)와 허준 추모 제례, 허준 추모 백일장, 어린이미술대잔치, 무료한방진료, 전국 한의학 학술대회, 가족 장기자랑, 약령장터, 진기명기 경연대회, 향토 미술 전시회, 뮤지컬 공연 등 흥겹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개최한다.

(참조: "허준(許浚)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허준 선현에 관한 오해와 연구 과제

허준은 천첩 소생인가?

평안북도 용천부사를 역임한 허준의 아버지 허론에게는 첫째부인 해평 윤씨가 있었으나 일찍 죽어 손씨를 다시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첩으로 영광 김씨가 있었는데, 이 영광 김씨가 허준의 어머니이다.

허준은 시체를 해부하였는가?

신형장부도

드라마에 보면 허준이 스승을 해부하여 의술에 더 밝아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신형장부도"라는 해부도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책에 실린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허준이 시체를 해부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었나?

드라마에서는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나온다. 경상도 출신의 유이태라는 인물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는 허준 사후 100여년 뒤에 활동했던 명의이다.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 아니다.

허준은 의과에 급제하였는가?

드라마에는 허준이 의과에 급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허준은 미암 유희춘이 천거하여 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해도 벼슬이 종8품이었으나, 허준은 처음부터 종4품이었다. 이 당시에는 추천받는 이가 출중하면 이렇듯 파격적인 선발이 가능했다.

허준과 양예수는 라이벌이었나?

양예수는 허준이 30대 초반 일 때부터 이미 어의로 활동하던 최고의 명의였다. 미암 유희춘을 매개로 서로 알고 지냈고, 나중에는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같이 참여하는 선후배관계였다.

허준은 생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 벼슬을 받았나?

드라마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허준은 가장 밑바닥 신분인 천첩의 소생이며, 생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의 벼슬을 받는 것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허준은 사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를 받게 되었다.

예진은 실재 인물인가?

드라마에서는 허준을 사랑한 예진 아씨가 나온다. 하지만 그런 인물은 실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유학이 지배적이고 남녀가 유별하다는 전통으로 예진과 같은 의녀들이 여성들의 병을 돌보았다.

출생년도, 출생지, 초상화 등 역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어떤 계기에 한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무엇으로 어떻게 연구를 하였으며 어떤 연유로 궁중 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에게 한의술을 펴게 되었을까 등은 계속 연구 과제이다.

근거자료와 참고문헌

- 양예수, "의림촬요": 허준의 학문에 대한 평가
- 유희춘, "미암일기", 1571. 11. 2일자: 내의원 첨정인 허준
- 선조수정실록", 1592. 6. 1일자: 임진왜란의 발발과 허준의 선조 호종(扈從) 기록
- 선조실록" 1604. 6. 25일자: 허준에 대한 공신 책봉
- 선조실록", 1606.1.3일자: 선조가 허준에게 보국숭록대부라는 칭호를 내리려하자 사간원과 사헌부가 반대함
- 선조실록", 1606.1.9일자: 선조가 허준에게 보국숭록대부라는 칭호를 내리지않도록 함
- 최립(1539-1612년), "간이집(簡易集)" 권8 "休暇錄": 허준의 동갑내기 친구인 최립이 허준의 귀양살이에 대해 지은 시
-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 신동원, "조선사람 허준", 한겨레신문사, 2001.
- 한대희, "실록 허준은 살아 있다", 수서원, 2000.

동의보감 들여다보기 ("동의보감 25권의 비밀" 중에서)

동의보감의 구성

동의보감은 목록 2권, 내경(內景) 4권(3~6), 외형(外形) 4권(7~10), 잡병(雜病) 11권(11~21), 탕액(湯液) 3권(22~24), 침구(鍼灸) 1권(25) 등 총 2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은 주제별로 세분화된 수십 개의 문(門)과 질병별로 세분화된 소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므로 아픈 곳에 해당되는 특정 항목만 찾으면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일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특이한 구성은 몸에 대한 해석을 의학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풀어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질병치료 방법을 단순하게 나열하던 과거의 의학서 편찬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알기 쉬운 의학서로 구성하였다. 이 때문에 환자를 치료하면서 여러 의학서를 두루 참고할 시간이 없는 의사들과 자신의 질병을 스스로 치료하려는 일반 백성들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었다.

내경편 - 우주의 원리로 푸는 몸의 신비

동의보감에서는 인간의 몸을 단순한 기관의 조립체로 보지 않는다. 몸은 정신과 육체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사회구조와 자연(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완성되는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 따라서 몸의 질병도 자연과 사회의 부조화에서 연유되고, 치료도 이러한 부조화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내경은 '몸속을 비추는 거울'이란 뜻으로 26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생명 현상을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질병 예방법을 서술한 신형을 비롯하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인 정신과 기혈 등이 맨 앞에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몸의 내부를 구성하는 오장육부의 구조와 기능, 몸 속의 상태를 알려주는 물질인 대변과 소변 등 내과 질환의 영역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외형편 - 몸을 부위별로 설명

외형은 '몸을 구성하는 각 부위'라는 뜻이다. 따라서 몸 속을 주로 다룬 내경과 달리 머리, 눈, 코를 비롯하여 피부, 뼈, 항문, 손발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몸 바깥의 각 부위별 구조와 질병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외형을 마치 '바깥에서 집안을 살필 수 있는 창문'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몸의 내부와 분리된 외형 그 자체는 단순한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형에 질병이 생겼을 때에는 우선 몸속의 변화를 살펴서 근본을 알아낸 후에 차료해서 완치시킨다. 눈병이나 귓병이 생겼을 때 진맥을 먼저 한 후에 눈이나 귀를 살펴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외형을 보면 몸의 각 부위가 몸속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잡병 -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잡병은 '감기, 중풍, 당뇨병 같은 잡다한 질병'을 말한다. 앞에서 설명한 내경과 외형이 '동의보감'의 총론이라면, 잡병은 실제 질병을 치료하는 각론에 해당된다. 특히, 당시 사람들이 많이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20가지 주요 질병에 대한 감별과 치료법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전염병과 응급 질환에 대한 처치법도 수록되어 있다. 잡병의 마지막에는 '부인'과 '소아'에 대한 질병이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남자에게 없는 부인이나 소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별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탕액 - 한약의 효능과 사용법

탕액은 '약으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약초 이외에도 물, 흙, 동물, 물고기, 금속, 곤충에 이르기까지 1,393종의 한약재가 망라되어 있다. 이 중 640종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향약(鄕藥)이다. 탕액의 맨 앞에는 한약재의 채취시기와 건조법, 가공법, 달이는 법, 복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한약재를 15종으로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개별 약재에 대한 효능과 사용법을 서술하였다. 특히 향약의 경우 한자와 함께 명시된 한글이름은 우리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침구 - 침과 뜸의 모든 것

침구에는 침과 뜸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침과 뜸은 기가 흐르는 통로인 경락을 이용한 치료법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활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흐르던 기가 막혀서 병이 생겼을 때 막힌 것을 뚫어 병을 치료하는 것은 침이다. 그러나 뜸은 몸속에 찬 기운이 뭉쳐 병이 생겼을 때 쑥의 열기로 찬 기운을 몰아내거나 부족한 기운을 보해서 치료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침구는 내용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이는 '동의보감' 편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침구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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