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05-25 (Vol 4,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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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구루(스승)와 시샤(제자)’

인도 남부 최대 도시인 첸나이(옛 마드라스)의 IIT(인도공과대학)에 가면 구루나트(Gurunath)가 있다. ‘스승들의 마을’이란 멋진 이름의 이 공간은 학생들이 2루피(42원), 3루피(63원)씩 내고 짜이(인도 차)나 빵을 사 먹는 쉼터다. 늘 새벽 1·2시까지 바글거린다. 학생들이 허기진 배만 달래는 게 아니라 뭔가를 끝없이 토론하기 때문이다. IIT만 그런 게 아니다. 델리대학 등 인도의 명문대학 캠퍼스엔 어디나 구루나트 같은 곳이 있고, 풍경도 매한가지다. 인도 학생들만큼 논쟁이나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얼마 전 IIT의 구루나트에서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IIT의 경쟁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둘러싼 열정적인 토론 중간에 ‘구루와 시샤’란 말이 나왔다. 전기공학과에 다니는 미탈(Mittal)의 얘기에 같은 과 동기인 쿠마르(Kumar)가 ‘한 수 배웠다’는 뜻으로 했다.

구루(Guru)와 시샤(Shisa). 산스크리트어로 스승과 제자란 뜻이다. IIT학생들은 ‘구루와 시샤’의 문화가 세계에서 토론을 가장 잘한다는 인도인의 숨은 비결 중 하나라고 했다. 인도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용어인데, 우리의 ‘사제지간’과는 뜻이 조금 다르다. 스승에게 일방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승과 토론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는 것이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도교육의 강점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구루와 시샤’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공부하는 제자에겐 늘 스승과 다른 자신만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제자가 이견을 제기하면 스승은 ‘제대로 공부하고 얘기해’ 라며 버럭 화부터 내지 않고, ‘너의 생각은 뭐냐’고 다시 묻는다. 제자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를 세워 설명한다. 스승은 이런 비판을 수용한 뒤 공론화에 부쳐 다른 제자들도 토론에 참여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승의 논리도 수정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린 생각과 예의를 갖추면서도 명료한 논리로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과 능력이다. 그걸 못하면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자들은 지식만을 늘리는 게 아니라 사고의 틀까지 넓히게 된다. 한국 유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세계적인 석학인 교수에게 조목조목 반박하듯 질문하는 인도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게 같은 이유에서다.

비판을 수용할 줄 알고,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을 존중하는 것, 이게 인도의 ‘구루와 시샤’요, 판디트 사바(Panditsabha·인도 토론 문화)다. 교육의 최고 목표 중 하나인 창의성이란 것도 결국 정답을 많이 맞힐 때 생기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시작되는 법이다. 성숙한 사회 역시 수준 높은 질문이 쏟아지는 사회다.

‘말 많은 게 죄’ ‘논리보다는 정서’인 사고방식에는 ‘구루와 시샤’ 스타일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토론 좋아한다면서도 작은 비판이나 이견 제시에 극도의 흥분상태를 보이고 마는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문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때 상대방의 비판을 이성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설득하는 ‘구루와 시샤’ 문화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은 비록 우리보다 못살지만, 인도가 점점 두려워지는 데에는 이런 문화의 힘도 있다.

<조선일보 2007.5.25.금>

첨부
구루(스승)와 시샤(제자).hwp

이인열, 뉴델리 특파원 yi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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