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11-25 (Vol 4, No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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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낸 소식

[저서 소개] ' 디자인 활동을 통한 과학 학습'

- Learning Science through Designing Artifacts -

(서문)

문화적 실천으로서 디자인 활동을 위하여

"전자기 학습에서 현상 구현 활동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하였던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오년 전에 작성하였던 원고를 다시 살펴보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띄어 마음이 편치 않으면서도 현재와 맞닿아 있는 당시의 고민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졸업 이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구조물을 디자인하는 활동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학학습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특히 최근 과학교육연구의 새로운 동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문화적 접근을 통해 학위논문 작성 당시 지녔던 문제들이 명료화되고 확장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주제들이 연구 문제로 등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과학교육의 연구문제를 설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문화·역사적 속성을 지닌 사회적 과정이다.

본 글에서는 ”디자인 활동“과 관련된 본인의 연구 관심사가 변화하는 과정을 자서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실험실습과 관련된 과학교육의 연구 동향 변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되고자 한다.

학위논문을 쓸 당시 내가 “현상 구현 활동”을 통해 품으려고 했던 커다란 주제는 “손과 머리가 의미 있게 어울리는 탐구활동”이었다. 지도교수이신 박승재 교수님께서 과학탐구에 대해 말씀하실 때 종종 언급하시곤 했던 그리고 숱하게 수정되던 나의 연구계획서에 거의 항상 화두로 등장했던 이 구절은 당시 중학교에서 실험실습지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던 나에게 실제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실험실습이 학생들과 과학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고, 나의 학생들도 실험실습 위주의 수업을 매우 즐거워했다. 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의 활동이 “성공적인” 실험이 되게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하려고 애썼다. 반복되는 사전 실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부각되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어 통제하였고, 가능한 학생들을 친절하게 안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곧 심각한 모순을 깨닫게 된다. 실험을 하다보면 실험자의 의도와 달리 종종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이러한 상황이 교사인 나에게는 “성공적인” 실험을 이루어내기 위해 공부하는 기회가 되는 반면, 학생들은 말그대로 두 손을 놓고 어쩔 줄을 몰라 교사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내 의도만큼 참여적 사고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러한 자각은 자연스럽게 당시 서울대 물리학습연구실에서 윤혜경 선배를 비롯한 몇몇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발산적, 개방적 탐구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학생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열린 형태의 탐구를 통한 과학 학습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각자의 과학수업을 통해 실질적인 탐구의 기회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탐구를 통한 과학학습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하자 사물을 조작하는 물질적 실천이 과학적 앎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나는 문헌연구를 통해 이 문제가 앎과 학습에 대한 철학적 태세와 깊이 관련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개념 이해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무언가 추상적인 과정으로 보는 인지적 접근은 그 철학적 연원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잇닿아 있었다.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전제함으로써 실험보다는 이론을 그리고 비언어적인 것 보다는 언어적인 것을 더 우위에 두는 교육담론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앎에 있어서 신체화된 실천의 중심적 성격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들이 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등의 제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험의 독자적 성격을 밝히고 있는 과학사·과학철학의 연구나 지식의 비명제적 특성에 주목하는 언어학의 연구 결과들은 당시 탐구활동을 통해 과학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던 내게 커다란 울림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기존 과학교육의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어느 정도 그 한계를 짊어질 수밖에 없기는 하였지만, 학위논문에서 나는 “현상 구현 활동”이라는 공학 디자인 활동을 통해 개념 이해와 사물을 조작하는 물질적 실천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과학실험실습을 추구하는 동시에 조작활동과 사고활동이 별개가 아님을 설명하는 새로운 말하기를 시도하였다.

물질적 실천에 대해 좀더 깊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University of Victoria)의 마이클 로스 교수(Wolff-Michael Roth)가 이끄는 연구 그룹에서 박사 후 연구를 수행하면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구조물을 디자인하는 활동에 대한 과학교육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왔음을 볼 수 있었다. 신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상황화된 인지(situated cognition), 실천적 학습(learning-in- practice)과 같은 주요 개념에 대한 새로운 말하기가 이미 진행 중이었고, 비판심리학(critical psychology), 사회문화론(sociocultural theory), 문화-역사 활동이론(cultural-historical activity theory) 등이 과학학습을 이론화하기 위한 간학문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대화에 참여하면서 나는 물질적 실천과 신체화된 앎을 정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자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역사적 활동 전체를 분석의 틀로 삼아야하고 또한 그 참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개달을 수 있었다.

즉, 사물을 조작하는 물질적 실천은 그 행위를 이해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가능성의 구체적 실현태이기에 학습자의 “손”과 “머리”는 행위자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의 것이 아닌 것이었다.

학위논문을 쓰는 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구조물을 디자인 하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어떻게 새로운 개념을 학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몇 가지 안 되는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 걸리는 활동을 시켜야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이와 같은 질문들의 이면에는 개념 학습을 공동체적 사건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학습자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그리고 교사의 책임을 개별 학생과의 일대일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었다. 사실 나의 학위논문에도 이러한 관점이 상당히 전제되어 있었다.

연구자로서 나는 현상 구현 활동에 참여했던 네 명 학생들의 상호작용을 격려하기 보다는 개별적으로 탐구활동을 진행하도록 유도하였고 또한 개별 학생들을 단위로 비디오 자료를 분석하였다. 내가 접한 새로운 담화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개별 학습자들은 그들이 속해있는 실행 공동체가 제공하는 문화적 자원(언어, 각종 재료 및 도구)에 “이미” 노출되어 있고 문화적 자원이 학습자의 구체적 행위의 일부가 되는 과정은 교사를 포함한 실행공동체의 구성원에 의해 서로 매개된다는 점이었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았을대, 구조물을 디자인하는 행위는 재료를 변형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실험실습에 사용되는 도구의 변화과정이고, 디자인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디자이너 공동체의 변화과정이며, 구조물, 디자이너들, 그리고 도구들 사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공시적·통시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해질수록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허락되는 다양성의 수준이 높을수록 문화가 제공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실현되는 경로가 다원화되고 풍부해질 것이었다.

또한 개별 학습자를 분석의 단위로 놓았을 때에 부정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학습의 우연적이고 비결정적인 성격이 문화적 관점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과학학습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문화인류학적인 이해는 나로 하여금 과학교육자들 사이에서 다소 낯선 인문사회학의 연구 성과들을 수용할 뿐 아니라 더 발전된 이론을 제시하는 공동 연구 작업에 참여하게 하였고, 그 결과를 일련의 연구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Hwang, S., & Roth, W.-M. (2004). Co-evolving with material
artifacts: Learning science through technological desgn.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Research in Science Educationm, 24, 76-89
Hwang, S., & Roth, W.-M. (2006). From designing artifact to learning science: A dialectical perspective. Cultural Studies of Science Education.
Hwang, S., & Roth, W.-M. (in press). Of human bodies in scientific communication and enculturation. Journal of Curriculum Studies.
Hwang, S., Roth, W.-M., & Pozzer-Ardenghi, L. (2005).
Understanding collaborative practice: Reading between the Lines Actions. Outlines: Critical Social Studied, 7, 50-69.

많은 분들이 애를 쓰셔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초고가 Tex으로 작성되었던 데다 그림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편집하는데 많은 수작업이 필요했다. 책의 발행을 제안하고 수고해주신 박주선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학술정보의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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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명: 디자인 활동을 통한 과학 학습
저자명: 황성원
출판사: 한국학술정보
출판일: 2007.

황성원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