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5-04-25 (Vol 2,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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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토착화 연구개발 활동

홍대용(洪大容), 어떤 분이신가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한 조선 후기 과학 사상가

담헌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 마을에서 아버지 홍력(洪櫟)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에 첫 아들로 태어났다. 홍대용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남양홍씨 대종중 중앙종회 http://www.hong.or.kr)

어렸을 때부터 약하지만 너 댓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천자문, 소학, 사서 등의 책을 공부했으며, 당시 양반의 아들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과는 달리 홍대용은 벌써 열두 살 때에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겠다는 맹세를 했을 정도로 학문적 자각이 뛰어난 청소년이었다.

홍대용이 29세 되던 1759년에, 나주 목사였던 아버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기술자 나경적(羅景績)을 만나 함께 뜻을 모아 혼천의와 자명종을 제작하기로 하고, 그로부터 3년 후 1762년 두 대의 혼천의와 자명종을 만들게 되었다.

1765년 홍대용이 35세 때, 그의 작은 아버지 홍억(洪檍)이 중국으로 가는 사신 중 한사람으로 외교 문서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는 서장관이 되자 홍대용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 여행을 통하여 서양의 발달된 문물과 과학사상을 접하면서 천문, 지리,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을 쌓았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과학 사상을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1773년, 그의 나이 43세 때 자연 철학과 과학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의산문답(毉山問答)’과 수학, 천문, 측량도구에 대한 ‘주해수용(籌解需用)’을 저술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과학사상을 정립하였다.

그 후, 1774년 44세 때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하기 시작 하였는데,‘현감이 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공무의 안건도 복잡하기만 하여, 본래의 계획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의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지내던 중 1783년 10월 22일 5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첨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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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토착화" 투고 요청
한국 과학교육의 토착화를 염두에 둔 과학문화교육 관계 글이나 보고서 요약 등을 투고해 주시고, 또 이 글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의 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편집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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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홍대용.hwp

박승재
과학문화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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