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8-10-25 (Vol 5,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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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낸 소식

시각장애자 사법 행정고시 합격 - 귀로 뚫은 사시(司試)

앞을 못 보면서 사시 2차에 합격한 27세 최영씨는 컴퓨터 음성지원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의 도움으로 공부했다. 누군가 책 내용을 입력시켜 주면 컴퓨터가 그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최씨가 치는 키보드 정보나 마우스 좌표 같은 것도 컴퓨터가 음성으로 확인시켜준다. 책 입력은 강원산업 전 회장 정인욱씨가 만든 '정인욱 복지재단'이 도와줬다. 재단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써서 법학 전문서적 60여 권을 타이핑해준 것이다.

법학서적은 보통 600,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 많다. 게다가 판례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매년 개정판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책 내용 중 어디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어 책 전체를 새로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복지재단에선 책 한 장을 타이핑하는 데 1000~2000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입력하려면 한 달 이상씩 걸렸다는 것이다.

최씨는 어려서부터 차츰 시력이 나빠진 경우다. 고3 때 안과에 가서야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사실을 알았다. 시야가 차츰 좁아지면서 결국엔 시력을 잃는 병이다. 대학 졸업반이던 2005년 시력이 너무 나빠져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자 변호사의 꿈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2006년 법무부로부터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로 사법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사시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에선 1981년 점자 문제지를 써서 다케시타 요시키라는 시각장애인이 9번의 도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그를 위해 만들어준 수험서만 200권, 녹음테이프만 1000개였다고 한다. 나중에 교토 변호사회 부회장도 지낸 그는 검찰 수사기록을 스캔해서 이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 도움을 받아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엔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3명, 미국은 250명이나 된다.

국내 시각장애인은 1만여 명이다. 그 가운데 7000명이 안마사로 일한다. 선진국엔 시각장애인이면서 변호사·교사·컴퓨터프로그래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씨도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했다. 사회가 도와주기만 하면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제 몫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씨가 수많은 시각장애인들 마음속에 등불을 켜는 훌륭한 변호사가 됐으면 한다.

첨부
귀로 뚫은 사시.hwp

조선일보(2008.10.23.목)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