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12-03-26 (Vol 9,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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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교육은 변해야 하는가?

교육계를 질타하는 소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세상이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비단 교육계, 특히 학교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도 이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지식을 잘 가르치면 그것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을 잘 배우면 아들도 자기의 인생을 잘 살 수 있었다. 그만큼 사회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급변하는 사회이다. 아버지가 하는 것을 답습하여 그 아들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교육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는 소리인가? 누가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일단 수긍을 하면서도 나의 마음 한 편에서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음을 숨길 수 없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 정체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교육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런데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과거만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교육과정은 아무리 미래를 준비하는 내용들로 채운다고 하지만 과거의 지식이다. 과거만 경험한 사람(교사)이 과거의 지식(교육과정)을 가르쳐서 미래를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 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이것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모순이 현재의 공교육 위기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미래를 잘 예측한다고 해도 그 예측이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해서 이에 맞추어 하는 교육은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 그렇다면 결국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있다. 만약 퇴계선생이 환생이라도 해서 우리나라에 나타난다면 대학 총장인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과거의 사람이니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에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니 본체만체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달려가서 우리대학 석좌교수로 모셔 와야 할까? 두말할 것 없이 석좌교수로 모셔 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울대학교 총장이 나보다 먼저 달려가서 모셔 갈 것 같았다.

퇴계선생이 지금 나타나면 왜 그분을 모셔가려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게 될까? 골동품 수집하는 심정으로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셔서 우리 학생들이 배우도록 하기 위함일까? 당연히 우리 학생들을 배우게 할 것이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닌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과거도 아주 먼 과거의 사람에게 무엇을 배우겠다고 그 야단일까 말이다.

나는 이 가상적인 예화가 우리 교육이 잊고 있는 중요한 점을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본다.

지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시대가 변하면 쓸모없어지는 지식이 있는가 하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지식도 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삐삐라는 첨단 장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삐삐 사용법을 아는 것이 그때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대가 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당시에는 삐삐가 미래의 장치같이 보였다. 아마도 그 당시 학교에서 삐삐를 이용한 수업을 하는 교사가 있었으면 대단한 선생님으로, 정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선생님으로 평가받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는 그 때의 미래인 지금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다면 현재의 스마트폰을 사용한 수업은 어떨까? 그것이 20년 후에도 유용한 지식이 될까? 하지만 그 삐삐 시절에 가르쳤던 뉴턴의 운동 법칙이나, 문장 작성법, 지켜야 할 윤리는 지금도 쓸모가 있고 틀림없이 미래에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그 기본 원리는 단순하며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급변하고 복잡해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미래를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고, 그리고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바로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지식, 그 지식을 가르치는 일이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공교육은 그래야 한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지식,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기초지식이다. 모든 교과에는 기초 지식이 있다. 이 기초지식은 시대가 변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 나름의 효용성이 있는 지식이 기초지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교육과정을 5년이 멀다하고 바꾸고 있다. 지금은 한 술 더 떠서 새로 만든 교육과정이 현장에 투입도 되기 전에 새 교육과정을 또 만들고 있다.

우리 공교육이 위기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위기의 진단을 창의성의 부재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창의성 중요하다. 창의성은 교육에서 추구하는 최상위 교육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의 공교육 위기가 창의성 교육의 실패에서 온 것인가? 교사가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모든 학생들이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잘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 창의성 교육이 실패했다고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교육의 위기는 창의성 교육의 실패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기초교육의 실패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창의성도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기초가 된 연후에 창의성 교육도 가능한 것이다. 기초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창의성 교육은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창의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근본을 들어가 보면 기초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교육이 학교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지식도 학교교육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 기초교육이 몸이라고 한다면 그런 교육은 옷에 해당한다. 몸이 튼튼한 연후에 옷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몸이 부실한데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의 공교육 위기는 이 옷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몸의 문제인 것이다. 몸이 부실한데 대부분의 교육개혁 안은 옷에만 초점을 맞추어 있기 때문에 공교육 문제가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공교육이 몸이라면 사교육은 옷이다. 그런데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할 텐데 옷에 몸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공교육 살리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 사교육 배우기하는 것은 같아서 하는 말이다. 공교육은 이 기초를 그 중심에 굳건히 놓은 바탕에서 시대에 맞는 옷을 입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제도의 중심인 학교교육은 다른 어떤 제도보다 조직이 방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변화가 어려운 제도이다. 이 변화가 어려운 제도를 급변시키려고 하면 불가피하게 부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교육 내용의 중심을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초와 기본을 충실히 하는 데 두어야 한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내용이 교육의 중심에 있으니 시대가 변한다고 학교가 덩달아 춤을 추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내용을 학교 교육의 중심에 놓고 교수 방법이나 학교의 운영 방법이나 첨단 장비를 사용한 교수법 등은 얼마든지 새로 도입하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교육의 중심에 있는 기초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고 학교나 교사의 평가에 있어서도 이 기초교육을 얼마나 충실히 하고 있느냐가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이 이렇게 기초교육을 중심에 두게 되면 가르치는 교사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안정감을 가지고 학업에 임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교육의 개혁이 너무 급하게 이루어지고 더욱이 기초교육보다는 창의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교사들이 개혁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에 실을 꿰어야 바느질을 할 수 있듯이 아무리 우리 교육을 높이고 싶어도 순서가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사교육을 모방하는 것이 공교육 살리기가 아니라 사교육이 할 수 없는 기초 교육을 충실히 하는 것이 진정한 공교육 살리기이다.

(이 글은 3월22일 '한국과학교육던체총연합회(과교총)'가 주최한 '2012년 전국과학교육자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을 과교총의 허락을 받고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싣는 것입니다. 편집 머슴)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