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5-08-25 (Vol 2,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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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토착화 연구개발 활동

허준(許浚), 어떤 분이신가

-한의학의 전통을 우뚝 세운 학자이며 의술을 널리 편 명 의원-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으며 원천을 캐지 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이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라고 “동의보감”에 의미 깊게 언급한 허준(許浚) 선현은 용천 부사를 지낸 허론(許碖)의 서자로 1539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권세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를 보면, 허준이 ‘노자’, ‘조화론’ 등의 책을 유희춘에게 선물하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질병도 돌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허준이 의술에 뛰어남을 알고 있던 유희춘이 1569년(선조 2년)에 허준을 조선시대 궁궐 안에 있는 의원에 천거하는 편지를 이조판서에게 보냈다. 그래서 허준은 33세 때, 관직인 내의원 종4품 첨정에 이르게 되었다. 첨정은 내의원의 고위 행정직 제2위의 자리로 지금과 비교한다면, 보건복지부의 서기관(과장급) 이상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허준은 왕명을 받아 1581년에 첫 책인 “찬도방론맥결집성”의 교정을 완수하였다. 이 책은 조선초기부터 진맥학 학습의 기본 교재로 활용되어 온 것인데, 잘못된 점이 많아서 선조가 교정 작업을 명한 것이었다.

당시 천연두 병에 걸린 왕자(이후 광해군)에 대해 “약을 써서는 안 된다.”는 미신이 강하게 퍼져 있어서 어의 중 그 누구도 왕자의 질병을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으나, 허준이 나서서 병을 고쳤다. 그리하여 정3품 당상관 벼슬을 얻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다른 왕자와 공주 그리고 민간의 천연두 병을 많이 고쳐서 “천연두 병의 명의”가 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다른 신하들과 관리들은 핑계를 대며 왕을 보호하지 않았지만 허준은 의주까지의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 하며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 공으로 종1품 숭록대부가 되었는데, 의관으로서 종1품에 오른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또한 왕의 병세를 회복시킨 공으로 허준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리려 했으나 “신분 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이라며 사헌부와 사간원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선조는 어쩔 수없이 취소하였다.

총책임자로서 허준은 1596년에 유의 정작, 어의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함께 “동의보감” 책의 편집을 시작하였다. 1607년에 선조가 병으로 죽자 당시의 수의였던 허준은 그로 인해 의주로 유배당하였는데, 수의로 일하느라 절반도 쓰지 못했던 “동의보감”을 유배당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다. 선조가 죽은 후 왕이 된 광해군이 허준을 귀양살이에서 풀어주었다. 1610년(광해군 2년) 72세 되던 해, 드디어 허준은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바쳤다. 허준은 “동쪽 지방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는 뜻”의 동의(東醫)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75세 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던 “동의보감”이 훈련도감본 목활자로 발간되었다.

이 해에 크게 유행한 온병에 대비하기 위해 허준은 “신찬벽온방”을 지었고, 당독역(성홍열)의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 “벽역신방”을 편찬하였는데, 이책에서 보인 허준의 성홍열 관찰은 세계질병사상 가장 이르면서도 정확한 기록 중 하나로 평가되는 것이다.
허준은 1615년(광해군 7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 광해군은 그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였다.

한의학 관련 주요 업적 및 영향

첫째로 허준 선현은 조선 의학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둘째는 동아시아 의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셋째는 세계 질병 역사에 기여하였다.
넷째는 한의학과 궁궐 의술 뿐 아니라 민간 의술과 한의학교육에도 공헌하였다

허준 선현에 관한 오해와 연구 과제

허준은 천첩 소생인가?
허준은 시체를 해부하였는가?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었나?
허준은 의과에 급제하였는가?
허준과 양예수는 라이벌이었나?
허준은 생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 벼슬을 받았나?
예진은 실재 인물인가?

출생년도, 출생지, 초상화 등 역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어떤 계기에 한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무엇으로 어떻게 연구를 하였으며 어떤 연유로 궁중 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에게 한의술을 펴게 되었을까 등은 계속 연구 과제이다.

(좀 더 상세한 것은 "첨부"에 있습니다.)

첨부
허준원고교육마당9.hwp

박승재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