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5-09-25 (Vol 2, No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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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토착화 연구개발 활동

세종대왕(世宗大王) 어떤 분이신가

- 우리나라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에 계셨던 임금님 -

세종대왕은 1397년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2살의 나이로 충녕군에 책봉되고 22세의 나이로 조선왕조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하여 32년간에 걸쳐 훈민정음의 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 큰 업적을 남기고 1450년에 54세로 승하 하였다.

세종은 어린 시절 공부에 열심이었다. ‘무서운 공부꾼’으로 영명(英明)하고 총명(聰明)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철학과 역사학에 흥미를 지니고 있었던 반면, 서도나 시에는 취미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거문고를 탈 수 있었지만 이를 즐기지는 않았고 문헌을 통해 이해한 음악 이론과 음향감은 상당히 날카로워 훗날 박연이 편경을 제작할 때 미소한 음의 차이를 포착할 정도였다. 세종은 자기가 기억력이 뛰어남을 말하기도 하였는데, 실록에는 ‘나는 책을 한 번 읽으면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궁중에서는 중국을 본따 새, 꽃, 나무를 키웠는데 세종은 과일나무로 대체하여 나라에 유용하게 쓰자고 명하였으며 후원에 조를 심게 하기도 하였다. 세종의 취미는 매사냥과 수렵이었으나 무술에 뛰어나지는 않았다. 결코 서생형, 또는 예술가형의 인물은 아니었고 주로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을 즐겨할 만큼 이론에 능하였다. 어릴 때는 양녕대군의 태도에 정면에서 비판을 가하고 반성을 촉구한 예는 태종실록에 가끔 나타난다. 세종의 이론이나 언변은 즉위 뒤에도 군신과의 의정이나 경연에서 항상 권위를 가지고 이끌었다.
세종은 유교인(儒敎人)으로 주자학적 교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중국의 학문과 사상을 즐겨 읽음으로써 그 당시의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이었다.

15세기 초반의 조선은 친원적인 고려에서 친명으로 틀을 바꾸어야 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태종 때와 마찬가지로 세종은 중국에 대하여 사대주의를 취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으로 판단할 때 이해되는 것이었다. 명의 사신은 토산물의 요구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수렵용 매와 사냥개가 문제가 되었다. 명 사신은 일년에도 수차례식 입국하면 여러 달씩 체류하여 심한 때에는 2백마리 소바리의 짐을 꾸려 귀국한 예도 있다. 세종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대주의를 주장하여 대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세종의 대명 정책은 굴욕적인 사대주의라기 보다 실리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세종은 경학만으로는 실용성이 적고 세계관이나 자기반성을 위하여 사학의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세종의 학문관은 신하들의 사학 지식이 부족함을 수시로 지적하였다. 여기서 세종이 뜻하는 사학연구는 오늘날의 역사학이 아니라 중국의 고사성어에 나타난 것으로 왕으로서의 치세나 신하로서 누구나 가져야 할 수신제가의 반성을 위한 실용적인 것을 뜻한 것이었다.

이러한 학문적인 태도가 곧 세종의 실리, 실용주의와 결합되었으며, 이것이 세종 즉위 30여 년 동안 과학기술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숭녕의 “세종대왕의 개성의 고찰” 참조)

세종대왕의 과학기술 관련 주요 업적

도량형 정비
시각 측정 도구
독자적인 천문학
기상 측정 기구
농지 개발
금속활자의 발전
우리 나라 글 훈민정음
인재의 등용과 집단 활동

선현 관련 탐방지와 기념사업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 신도비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
(참조: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 과학 탐방”,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3)

세종대왕 시대의 과학기술

전상운 교수는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에 서 있던 세종 임금” 이라는 글(한국과학사학회 2004.10.연구모임)에서 세종시대 과학기술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맺는말을 하고 있다.
“15세기 전반기인 조선 초에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그 질과 양에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동아시아에서 더 나아가 세계사적인 시야에서 볼 때에도 유례가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15세기 전반기의 과학사는 조선왕조 세종 시대의 과학자들에 의하여 정상으로까지 끌어 올려졌다. 과학의 역사에서 15세기는 세종의 시대이다. 세종 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제 우리나라나 동아시아의 테두리에서가 아니라, 세계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15세기의 주역으로서의 뚜렷한 위치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그 성과는 이슬람 과학과 서유럽 근대과학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주는 창조적 동아시아 과학의 업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세종시대에 “자주적 과학기술이 전개” 되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이 전개 되었다는 것이다.
1. 과학성과 실용성을 존중하다
2. 기술 자립과 개발을 위한 거시적인 노력을 기울이다
3. 인재를 뽑아 기르고 두뇌집단을 움직이다
4. 조직적인 공동연구를 해나가다
5. 국책 과제로서의 과학기술이 정책적으로 전개되다
6. 기술혁신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다

우리는 과학정책과 과학교육을 어떻게 하면 세종시대와 같이 세계적인 과학문화 창달의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박승재

첨부
교육마당10세종교육마당9[1].hwp

(좀 더 상세한 글이 "첨부"에 있습니다)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