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5-10-25 (Vol 2,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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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토착화 연구개발 활동

김정호(金正浩), 어떤분이신가

- 전통 지도학을 완성한 지리 학자이며 지도 제작자 -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현의 출생과 사망연도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804년경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1866년경에 옥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분도 명확하지 않고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알 수 없으나, 살던 곳은 당시 남대문밖(현재 중림동 약현성당 부근)이었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외동딸이 있었다.

김정호 선현이 참고한 역대의 지도와 지리지의 대부분은 최한기와 최성환이 소장한 것, 그리고 신헌의 도움으로 볼 수 있었던 관청 자료들이었다. 필요에 따라 확인할 곳은 답사를 한 것으로는 추정되지만,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올라갔다는 설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김정호 선현의 옥사설은 상당히 넓게 퍼져 있으나 기록이 없으니 어떻게 된 것일까? 국가 기밀이 알려질까봐 “대동여지도”의 판목을 모두 압수하여 불태웠다고 하지만, 지금도 판목 1매가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11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리고 “대동여지도” 인쇄본은 이십 여종 이상이 여러 곳에 있으니 어떻게 해서 이런 말이 전해 오는가?

김정호 선현의 ‘전국답사설’과 ‘옥사설’은 일제시 “조선의 지배자들이 훌륭한 인물을 시기하여 죽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인식이 들도록 조작한 것이 아닐까? 김정호 선현은 옛날 지도들을 수집하여 검토하고, 의심나는 곳은 실제로 답사를 하면서 지도 제작과 지리지 편찬에 평생을 바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기록과 자료가 부족하여 그 인물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지도와 지리지들은 당시의 우리나라 지리학의 수준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자료이고, 김정호 선현의 지리 사상이 뛰어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김정호 선현의 주요 업적

지도 제작
지리지 편찬

김정호 선현과 관련하여 가볼만한 장소

국토지리정보원 내 고산자 동상 및 지리박물관
고산자 거주지 표석과 고산자로 및 박물관

(참고. 양보경, 양진실, 김정호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겨레를 밝힌 과학기술 선현 탐방집 ⑪,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11)

김정호 선현의 공적이 갖는 역사적 의미

김정호 선현은 단순한 지도제작자가 아니라 전국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편찬했던 지리학자였다. 정밀한 지도 제작’과 ‘지방지도 발달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각 지역의 특성을 적은 ‘지역별 지지’와 ‘주제별 지리’를 종합하는 노력을 경주하였으니 이것은 당시 국가사회의 변화와 필요를 고려한 것으로 실용적 가치를 지녔다고 하겠다.

김정호 선현은 지도와 지지의 연구 제작뿐 아니라 이들 자료를 간행하여 국토에 대한 정보를 주로 지배층으로부터 일반에게 보급하는데 공헌하였다는 특징도 있다.

또한 “대동여지도”에서 볼 수 있는 휴대용 형태의 지도 제작은 상세하고 풍부한 국토 정보를 이동하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선진적이었다.

높은 벼슬에 오르지 않았던 김정호 선현의 이러한 활동은 국가나 양반층 중심에서 19세기에 이르러 일반 평민층에 이르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상황이 벌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근래에 이르러 동해 표기, 독도, 고구려 문제 등을 생각하면 지리와 지도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며 김정호 선현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하겠다.

(참고. 배호성, 고산자 김정호-이 달의 과학기술 인물 세미나 ⑪, 한국과학사학회, 2004. 11)

첨부
김정호교육마당[1][1]20041202.hwp

박승재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