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5-12-25 (Vol 2, No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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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통합교육으로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하여

펜을 들기 전에 ‘과연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잠시 머뭇거리게 합니다. 기껏해야 주일학교에서 장애우를 위해 봉사를 해 본 게 전부인 제가 청각장애를 위한 과학교육을 결심하게 된 것은 큰 변화입니다. 가까운 사람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마주치게 되는 장애인을 무관심한 채 지나쳐 온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 대로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계신 시각장애인을 도와드리거나 부축해 드린 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일학교 소망부-장애우로만 구성된-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나 길에서 시각장애인을 도울 때,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야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고 기꺼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번 학기에 ‘특수아를 위한 과학교육’수업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달라진 제 생각의 획기적인 변화는 ‘특수아를 위한 과학교육은 봉사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부족하거나 조금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가르치는 것이 봉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재아를 위한 교육을 하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보통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는 봉사한다고 헌신한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교사는 봉사와 희생정신이 의무적으로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특수아를 위한 교육을 한다고 해서 다른 교사들보다 특별히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자신의 일을 할 뿐이지 일+봉사는 아닌 것입니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생님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들도 장애인을 무조건적으로 돕고 양보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그림 삽화를 보면 목발을 짚고 가는 아이 옆에 서 있는 친구는 아픈 친구의 가방, 실내화 주머니, 자신의 가방, 실내화 주머니를 모두 들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닌데 말입니다. 무겁지 않은 실내화 주머니 하나는 아픈 아이가 들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면서 내 상황에 따라 도울 수도 있고 돕지 못할 수도 있고, 또한 도울 수 있으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놔두고 할 수 없는 부분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위해 늘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장애인을 더욱 더 멀게 느끼고 장애인이 부담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인격체라고 생각하고, 단지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면, 장애인에게 요구되지 않는 도움을 주는 과도한 친절은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통합교육과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개선은 꼭 필요합니다. 장애인이 더 이상 어려운 상대가 아닌 내 친구, 내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 연 희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