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6-04-25 (Vol 3, No 4)

로그인 | 웹진 | 한마당

먼젓글  |  다음글  |  차례

마음의 소리

과학교육 활성화와 교육전문직의 역할

제7차 과학교과 교육과정은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하고, 사회와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과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의 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도 없이 과학교과의 수업 시수가 크게 줄어버리고,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라는 옹색한 핑계를 앞세워 학습 내용을 30%나 줄여 버렸다. 학생들의 수업 능력을 고려해주겠다는 선택권은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을 ‘쉬운 과목’으로 몰려가게 만들었고, 교사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학교 현실에서 수준별 교육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해주지 못하는 학교까지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제7차 과학교과 교육과정에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탐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교육목표가 그것이다. 탐구활동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향상시켜 주겠다는 목표가 나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중등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과학자에게나 필요한 탐구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정말 그런 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탐구활동을 통한 교육의 효율성도 문제이지만, 그런 목표가 자칫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교육은 과학자 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천연자원도 충분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에 과학을 이용한 경제력 확보는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과학 지식을 통해서 경제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생명공학(BT)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경우에는 고도로 훈련된 소수의 전문 인력만으로 가동되기 때문에 과학자의 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가르치는 일은 엄청난 사회적 낭비가 될 수 있다. 오히려 과학 기술계로 진출할 학생들만을 선별해서 집중교육을 시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현명하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본래 고대의 과학은 주술사, 추장, 왕으로 이어지는 절대 권력의 핵심이었다. 계절과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나 흉내 낼 수도 없었고,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었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필요로 했던 농경 사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결국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과학 지식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전통은 극히 최근까지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천문학의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오늘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권과 같은 개념은 모두 현대 과학의 확산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충분한 과학상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학교 현장에서의 과학교육도 현대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오늘날 과학은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민주사회를 원만하게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절대 권력이 지배하던 과거에는 권력자의 선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정확한 과학지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시민들 각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하는 원만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또한 과학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상당한 자유가 허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비주의를 가장한 잘못된 상술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충분한 과학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하면 엉터리 상술에 속아 넘어가서 아까운 재산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과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연관과 세계관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다. 자연과 인간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이해가 없으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또한 과학 지식이 충분하지 못하면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예술을 충분히 즐기는 능력도 갖지 못하게 된다.

탐구 활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과학 교육에서 ‘탐구활동’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 시행된 제3차 교육과정부터였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탐구활동 중심의 교육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탐구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과학교과의 총괄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탐구활동에 꼭 필요한 실험실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고, 과밀 학급도 정상적인 탐구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교사 양성이나 재교육 프로그램에서조차 탐구 활동에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탐구활동의 취지가 아무리 좋고,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충분한 환경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탐구의 과정은 문제 인식, 가설 설정, 실험 설계 및 수행, 문제 해결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만약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가 인식한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면 가설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서 실험을 반복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는 탐구를 흔히 ‘모형 개발’ 또는 ‘가설 연역적 탐구’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탐구가 모두 ‘가설 연역적 탐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 과학에서 소개되는 과학적 개념이나 법칙의 적용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연구에서는 탐구자가 처음부터 탐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연역적 탐구’에 더 가깝게 된다. 실험에서 관찰된 현상에 어떤 한계 법칙이 적용하는가를 알아내는 ‘귀납적 탐구’도 많이 활용된다. 또한 새로운 분자를 합성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탐구의 경우에는 탐구의 목표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흔히 ‘발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런 창조적 탐구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내려는 창조 의욕이 그 동기가 되고, ‘유용성’(경제성)에 대한 고려가 문제 인식의 핵심이 된다.

충분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유행을 따라 무리하게 추진하는 무리한 탐구활동 중심의 과학교육이 심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충분한 수업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학급당 학생의 수가 많을 경우에는 탐구학습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상호작용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어 탐구활동 전체가 형식적인 활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탐구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교과서에 소개되는 모든 개념과 법칙을 탐구를 통해 학습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런 뜻에서 제7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도입된 심화과정의 경우에는 교과서의 대부분이 탐구활동으로 채워진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탐구중심의 과학교육이 가지고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목표와 과정을 제시해주는 탐구활동이 자칫 과학적 탐구활동 자체를 정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제시된 탐구과정을 따라야 한다면 그 자체가 학생들이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어 버린다. 과거에 중요한 개념이나 법칙을 처음 찾아낸 과학자의 탐구과정을 반복해보는 것도 의미가 없다. 관련된 과학적 개념이나 법칙이 충분하지 않았던 당시의 과학자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던 탐구가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자명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과학은 지난날의 일을 되짚어보는 역사가 아니다. 과학자의 옛날 이야기는 과학사(科學史)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겠지만, 현재의 과학을 배워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공연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탐구중심의 과학교육에서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과학지식은 구성주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학생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합의로 그 내용이 바뀌어 질 수 없다는 뜻이다. 토론이나 읽기 자료를 이용하는 탐구활동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자칫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의 상호작용 과정을 충분히 관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잘못된 오개념을 습득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탐구활동에서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의 특성이 강한 과학적 탐구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다. 또한 과학 실험에도 나름대로의 재능과 적성이 필요하다.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낯선 시약과 기구를 다루는 일이 모든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런 재능과 적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실험을 요구하는 탐구중심의 과학 시간에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결국 탐구중심의 과학교육은 처음부터 과학에 필요한 재능과 적성을 가진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적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

우리 과학 교육과정에서 ‘창의력’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 시행된 제5차 교육과정부터였다. 1992년부터 시행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인간상을 추구하기도 했다. 모든 과학적 탐구에서 ‘창의력’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창의력이 배제된 과학적 탐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창의력이 과학에서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과학을 통해서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뜻에서 과학 교육에서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 교육에서 창의력 향상을 위해 강조되는 것은 서술형 답을 요구하는 ‘열린 문제’(open question)와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다. 단답형으로 정해진 답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를 포함하는 서술식 답을 요구하고, 교사의 설명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협력)을 통해서 학생들의 사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서술식 답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열린 문제가 반드시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켜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우리 교과서의 경우처럼 해결해야 할 목표와 탐구의 과정까지 자세하게 제시해주는 탐구형 열린 문제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될 가능성보다는 또 다른 형식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정형화할 가능성이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반드시 학생들의 창의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없다.

열린 문제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보다는 학생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수업의 효율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보다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 진정한 과학적 창의력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학 개념과 법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현대 과학의 개념이나 법칙들 중에는 중등학교 과정의 탐구활동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탐구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런 개념이 제외되어 버리면 오히려 학생들의 진정한 창의력 향상에는 걸림돌이 된다. 과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학생은 결국 진정한 과학적 창의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모든 교육에서 창의력 향상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고통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중등학교의 음악시간에 모든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작곡을 해보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문학적, 예술적 창의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중등 교육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쉽게 길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창의력도 다른 분야의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쉽게 길러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 교육이 창의력 향상에 특별히 유용한 것이라는 근거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창의력 향상이 과학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과학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병폐는 중앙집권형 교육행정 조직 때문에 나타나는 획일성이다. 다른 나라의 교육 철학이나 방법에 장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단기간의 현장 적용 과정을 거쳐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탐구활동 중심의 교육’, ‘열린 교육’, ‘수행평가’ 등의 모두 그런 예가 된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개발된 교육 철학이나 방법이 우리의 사회적 환경에도 적용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 성공한 교육이 다른 학교에서도 반드시 성공하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우리 학생들이 살아가야 할 21세기는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의 교육제도를 무차별적으로 도입해서 만든 국적불명의 교육철학과 방법으로는 그런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할 수가 없다. 과학교육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1세기의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틀에 박힌 탐구활동을 이끌어 가는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학습 방법을 고안해내어 실천할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과학교육에서의 창의력은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들에게 요구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교사들의 창의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 대한 무리한 행정적 간섭이 사라져야 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호 작용에 의해서 그 효율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교육을 정형화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능하고 창의적인 교사들을 찾아내어 용기를 주어야 한다. 다양성을 가장 존중해주어야 할 분야가 바로 교육이고, 교육의 다양성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사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다. 교육 행정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다양한 교육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현실적 환경을 만들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 글은 시도 과학교육 장학진 모임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교육인적자원부의 관계자와 저자의 허락을 받고 계재하는 것입니다. 편집 머슴)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과학컴뮤니케이숀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