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6-06-25 (Vol 3, N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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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낸 소식

한국과 토고


한국이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1954년,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였다. 예산이 없어 대표팀은 합숙훈련을 1주일밖에 못했다. 대표팀이 스위스로 떠나면서 갖고 간 선수단비(費)는 200달러가 전부였다. 일단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선수단 22명이 함께 갈 취리히행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두 그룹으로 나뉘어 2진은 첫 경기 전날 밤 늦게야 도착했다. 공항에서 기자들이 비웃듯 물었다. “경기 날짜나 제대로 알고 오는 거냐.”

▶헝가리는 1952년 올림픽 제패 후 32전 무패를 내닫던 우승 후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56시간을 꼬박 날아온 여독(旅毒)까지 고스란히 쌓인 채여서 하프라인 넘기도 쉽지 않았다. 0대9. 골키퍼 홍덕영의 가슴은 숱한 강슛을 받아내느라 퍼렇게 멍들었다. 선수들은 1원 한푼 받기는커녕 커피 한 잔도 제대로 사먹지 못했다. 그때 선배들의 눈물은 월드컵 4강의 출발점이자 밑거름이었다.

▶독일월드컵에 데뷔하는 토고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0달러다. 32개 참가국 중 제일 가난하다. 남한 절반쯤 되는 땅에 570만명이 산다. 인산과 커피, 카카오를 주로 생산하는 농업국가다. 잔디구장은 수도 로메에 있는 2개가 전부다. 그러나 축구 열기는 50년 전 한국에 비길 수 없게 뜨겁다. 마을마다 직장마다 축구팀이 있다. 맨땅에서 뛴다. 프로팀도 14개나 된다.

▶지난 1월 이집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회에 토고 선수들은 개막 전날에야 왔다. 월드컵 본선진출 보너스를 달라며 축구협회와 승강이하다 늦어진 것이다. 가나가 2만달러와 집, 자동차를 보너스로 줬다는 소식에 선수들은 격분했다. 토고는 그 대회에서 전패했다. 토고가 독일에 월드컵 베이스캠프를 차린 뒤로도 축구협회는 약속했던 보너스 3만5000달러를 주지 않았다. 선수들은 막판훈련을 거부했고 감독은 사임했다.

▶50여 년 전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을 때 한국 대표팀은 가난하고 외로웠어도 자존심은 잃지 않았다. 당시 대표선수였던 박재승옹은 “오로지 조국의 명예를 위해 월드컵에 나섰고 참가 전이나 후나 돈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속사정이 어떻든 결국 돈 때문에 첫 월드컵에서 사보타주하는 선수들을 보며 토고 국민들은 얼마나 실망하고 애태우겠는가. 토고팀의 자중지란이 오늘 밤 한국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떠나 명예보다 돈이 앞서는 현대 월드컵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듯해 딱하다.


조선일보 2006.6.13(화)

첨부
만물상[한국과 토고].hwp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