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6-08-25 (Vol 3,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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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너무 느린 인터넷

한강에 거대한 돌연변이종 물고기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는 내용의 영화 ‘괴물’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컴퓨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괴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가다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프랑스의 너무 느린 인터넷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연세대 의과대학 신의진(申宜眞) 교수가 쓴 조선일보 8월 11일자 아침논단의 글을 보고 깨닫는 바가 많았다. 신교수는 학회 참석차 프랑스 파리에 머물면서 너무 느린 인터넷 때문에 짜증이 나서 사용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한 프랑스측 학회장의 공식 설명을 옮긴 신교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프랑스도 정부 차원에서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는 사업을 수년 전 시도했으나 많은 학자들의 반대로 인해 주춤하고 있다는 것이다. 빠른 인터넷 접속이 필요한 연구소나 비즈니스 센터 이외의 지역까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면 불건전한 정보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고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중독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며 정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컴퓨터 사용을 금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 정상적인 지능 발달과 사고의 형성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중학교 때부터 배워도 결코 늦지 않다고 판단한 듯 하다. 또 수년 전 이야기이지만, 프랑스의 어느 유력 신문사 기자가 아직도 e-mail 주소를 갖고 있지 않은 사실에 놀랐다는 한국 기자의 글을 읽은 적도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산간벽지는 물론 외딴 섬에 이르기까지 초등학교에 정부가 앞장서서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人性)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초고속”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인내심이 사라졌다. 클릭해서 조금만 늦어도 짜증을 낸다. 무한 질주하는 속도전에서는 속도만이 유일한 미덕이다. 이렇게 속도만을 추구하다보니 참을 줄을 모르고 즉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을 살해하는 행동도, 군대생활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총기로 상관을 죽이는 행동도 참을 줄 모르는 조급성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참는 것은 다른 동물이 가지지 못한 인간의 커다란 미덕인데 인간은 이 미덕을 상실해가고 있다.

컴퓨터로 친구를 사귀고 컴퓨터로 물건을 사고팔며 컴퓨터로 책을 읽고 컴퓨터의 가상인물과 연애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여행하면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컴퓨터를 통해 얻는 동안 컴퓨터는 인간 사고의 유형을 바꾸어놓고 있다. 깊이 사색하여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퇴색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는 ‘사색’이라는 어휘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참을성 있고 사색하는 인간 모습 사라질까 걱정

컴퓨터와 휴대폰을 비롯한 IT 제품들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지만 인간은 이 기계에 종속되어 있다. 보라, 컴퓨터와 휴대폰이 없으면 인간이 얼마나 불안해하는가를. 이제 IT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서서히 괴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괴물이 인류를 꼼짝하지 못하게 조여 올 날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프랑스의 IT정책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은 다행히 퇴치할 수 있었지만 괴물로 변신한 컴퓨터는 퇴치 불가능한 슈퍼 괴물이 될 것이다.

다산 포럼 208

송재소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