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04-25 (Vol 4,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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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낸 소식

시각장애인과 사법시험

전통시대에 시각장애인들은 운명 등을 연구하는 명과학(命課學)과 의학·음악 등에서 전문가로 인정 받았다. 세종 27년(1445) 명과학에 밝은 시각장애인(命課盲) 10명을 서운관(書雲觀·천문·역학 연구기관)에 소속시켜 연구하게 했는데, 정조가 ‘춘저록(春邸錄)’에서 “한 기예에 전념하면 문득 신에 통해서/ 화복을 사전에 예측해 해소할 수 있으니(專心一藝却通神/禍福先機能稍解)”라고 읊은 것처럼 국가에서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사림파 김정국(金正國)이 편찬한 ‘기묘록(己卯錄)’에는 의술과 이학(理學)에 정통했던 시각장애인 명의 안찬(安瓚)이 사화에 연루되어 장배(杖配)되었다가 연서역(延曙驛)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싣고 있다.

성종 때는 왕비가 주최하는 내연(內宴)에는 시각 장애인 악사들을 썼는데,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는 현금(玄琴)은 악공 이반(李班)이, 가야금은 정범(鄭凡)이 가장 능했다고 전한다. ‘홍재전서’ 경사강의(經史講義)편에는 정조가 경연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왜 음악에 능한지를 묻자 이곤수(李崑秀)가 “대개 그들의 정신이 전일하기 때문에 기예에 대하여 반드시 정통하였고 성음(聲音)에 대하여 반드시 잘 살펴 알았음을 취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시경’ 주송(周頌)에는, “맹인 악사여! 맹인 악사여!/ 주나라 종묘 뜰에 서 있네/ ……/ 선조께서 들으시고 우리 손님도 오셔서/ 곡이 끝날 때까지 길이 들으시네(有?有?/在周之庭/……/先祖是聽 我客戾止 永觀厥成)”라는 시가 있다.

최한기(崔漢綺)는 ‘인정(人政)’ 교인문(敎人門)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남의 언어를 잘 들어 생각함이 상당히 넓고, 손으로 배우는 데(手敎)에 밝아서 사물의 형체로 상상(想像)한다. 무릇 인도(人道)와 인사(人事)에 대해서도 모두 참작하고 헤아려, 때로는 눈은 있지만 마음이 눈먼 사람보다는 나은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두 시각장애인이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사람이 육체가 아니라 인격과 능력으로 평가, 대접 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2007.4.9.월>

첨부
[이덕일 사랑]시각장애인과 사법시험.hwp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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