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12-05-25 (Vol 9,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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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강연 2] 조선시대 세작된 네 쌍의 천문도와 천하도

요약

조선시대에는 천문도와 세계지도가 한 세트로 제작되는 일이 여러 차례 발견된다. 현재 알려진 것 만해도 네 쌍이 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1395)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가 그 첫 번째 사례이다. 혁명을 통해 왕씨 고려 왕실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력을 차지하며 새 왕조를 건설한 초기였기에 반혁명의 세력들이 제거되지않은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면 과제들이 많았을 텐데 국책 과제로 무엇보다 먼저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천문도와 세계지도는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명(天命)을 받은 자만이 혁명(革命)을 통해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요순 임금이 그랬듯이 천문도를 만들어 만 천하에 천명을 받아 조선을 건국했음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겠다. 하늘의 명을 받아 지상 세계를 통치하는 지존의 유일한 존재가 제왕이기에 천문도와 함께 천하도를 제작하고, 그 의미를 발문으로 기록해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천문도를 통해서는 당시 천문학의 스탠다드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천문도와 함께 한 세트를 이루었던 천하도를 통해서는 당시의 세계관을 더욱 명확하게 읽을 수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전통 천하도는 ‘직방세계’라는 협소한 중국 중심의 지역만을 의미있는 세계로 보아 유일한 중화인 중국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 주변에 중화의 교화를 받는 조공국들을 매우 소략하게 묘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이러한 직방세계의 외연이 확장된 넓은 세계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15세기 당시의 세계관이 어떠했는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광대한 세계 제국을 이루었던 원나라에서 일반적이었던 일반적인 중화주의와는 비교되는 광대한 세계를 그려내던 세계관이었다. 또한 원대에 확보한 아프라카와 유럽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세계의 지리 정보와 이슬람의 지도학 전통까지도수용해 그야말로 동양과 서양의 지리 정보를 종합한 세계지도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세종대 천문학이 동서양 천문학을 종합한 것이었다는 선학의 연구가 있듯이, 그러한 양상이 이미 국초에 제작된 천하도에서 실현되고 있었던 셈이다.

천문도와 천하도는 이후에도 세 차례 더 세트로 제작되었는데, 1708년 영의정 최석정의 주도로 제작된 <적도남북총성도>와 <곤여만국전도>가 두 번 째 사례이다. 이는 서양식 천문도와 천하도가 조선에 소개된 지 100년만에 자체 제작한 것으로, 천문도의 탕약망(아담샬)이 1631년에 제작한 것이고, 천하도는 이마두(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제작한 것이다. 이 천문도와 천하도는 지적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적지않은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광대한 신비의 세계를 묘사한 지리 지식들, 대척지에서 거꾸로 매달려 살아야하는 일과 중국이 중심이 아닐 수 있는 말세적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 지식들이었다. 이에 최석정은 서양식 천문도는 실제의 하늘을 잘 묘사했다고 칭찬하며 인정한 반면, 서양식 천하도에 대해서는 황당무계하다고 배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분석은 나중을 기다리자며 천문도와 천하도를 묶어서 세트로 국책과제로 모사 제작했던 것이다. 천하도가 담은 비상식적 지리 정보에 대해서 회의적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 서양식 천하도에 담겨있던 하늘과 땅을 통합해서 보는 새로운 세계관이 조선 지식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탄생했다. 우리는 그러한 사정을 당시 28수의 별자리를 그려놓고 있는 원형 천하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론 의심하고, 한편으로는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쳐다보며, 또 한편으로는 참이라고 인정하며 서양식 천문도와 천하도는 널리 유통된 듯하다. 이러한 대중적 유통에 최한기가 1834년에 목판으로 제작한 <황도남북총성도>와 <지구전후도>는 큰 역할을 했다. <황도남북총성도>는 대진현(쾨글러)의 천문도(1723)를, <지구전후도>는 중국인 장정부의 세계지도(1800)를 간략히 모사 제작한 것이다. 모두 지름 30cm 내외의 작은 크기로 목판으로 찍어내 널리 유통되었다. 19세기 중엽 이 천문도와 천하도는 매우 유행해서 하나씩 소장하는 것은 여유있고 공부 좀 했다는 양반 사대부의 자랑거리 였던 듯했다. 그간 천문도와 천하도가 왕이 독점하고 하사하는 것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것에서 변화된 시대상을 이 천문도와 천하도의 대중조선시대 제작된 네 쌍의 천문도와 천하도적 유통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천문도와 천하도의 대중적 유통은 역시 최한기와 김정호가 만든 <혼천전도>와 <여지전도>에 의해서도 증폭되었다. 1834년의 것이 중국에서 전래된 서양식천문도와 천하도를 간략하게 베낀 것에 불과하다면 이 <혼천전도>와 <여지전도>는 새롭게 구성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서양도와 천문도와 천하도를 해체해 동양적 패러다임에 따라 재구성한 것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불구의 천문도와 천하도가 되고 말았지만 더욱 생생한 역사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산물이다. 즉 이질적 과학 지식을 접한 토착 지식인이 어떻게 이질적 과학 지식을 해체하고 전통적 패러다임으로 해체된 지식 정보들을 끌어들여 재구성하는지 너무 생생하게 잘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생생한 역사의 변화과정을 천문도만이 아닌 세트로 만들어진 세계지도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첨부
문중양.pdf

문 중양
서울대학교, 서남천문학사연구소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