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13-05-15 (Vol 10,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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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과학문화 활동

비단으로 엮은 과학

비단은 지난 수천 년 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옷감이다. 비록 합성섬유 옷감이 시중에 넘쳐 흐르지만 지금도 비단 옷감이나 제품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연섬유의 대표로 자리 잡은 비단은 아름답게 염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예쁘다 못해 신비감까지 주는 영롱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시와 시조에는 물론 동식물 이름에도 비단이라는 접두어가 종종 눈에 뜨인다.

우리나라 시에서 비단은 매우 곱고 부드러우며 순결한 의미로 종종 사용되어 왔다. 일상에서도 비단결 같은 피부, 비단결 같은 마음씨, 비단 같은 물결, 비단안개, 비단구름 등 친근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시 중에서는 김소월의 <비단안개>가 널리 암송되고 있다. 네 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 연 첫줄마다 "눈들에 비단안개 들리울 때"를 노래하며 둘째 줄마다 '그때는.....'으로 이어진다.
첫연과 마지막 연을 옮겨본다.

눈들이 비단안개에 들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요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

눈들이 비단안개에 들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요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새봄의 따사로운 햇볕이 세상을 어루만지기 시작하는 이른 봄에 나뭇가지 끝에 새눈이 기지개를 펴고 수줍은 듯 빼꼼히 바깥 세상을 엿보려 한다. 그러나 때마침 찾아온 비단안개가 둘러싸고 있어 시야를 가린다. 첫사랑의 달콤한 맛에 빠졌던 때가 이때였나 싶은데, 가슴 뜯기는 이별의 고통을 안겨준, 원망스럽기도 한 계절이 바로 이때였었다.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미풍에 미동으로 봄의 춤을 추는 비단안개가 그립다. 여기저기 물길을 막아 안개다 싶으면 지척도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농무(濃霧)가 눈앞을 뒤덮는 요즈음, 살랑이는 봄바람에 얇은 비단천처럼 너울 춤추는 비다안개를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구잡이 개발로 비단안개가 우리와 얼마나 멀어졌는지. 옮기지 않았지만 제3연의 "그때의 종달새 솟아 때러라."를 실감하는 청소년들이 요즈음은 몇 명이나 될까?
삼천포의 시인 박재삼의 시<무제>(無題)를 감상해보자.

대구 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럴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햇살이 사과밭 과수원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아침에 기찻간 창을 통해 나를 찾아와 새삼스레 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게 한다. 사랑의 열병이 화자를 점령한다. 임을 향한 마음이 어찌나 간절한지 그 부드러운 비단의 감촉조차 고통스럽게 느낄까!
다음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경포호수를 읊은 시를 찾아보자.

강남에 비 개이자 저녁 안개 자욱한데
비단 같은 경포호수 가이없이 펼쳐졌네
십리에 핀 해당화에 봄이 저물고 있는데
흰 갈매기 나지막이 소리내며 지나가네.

江南小雨多嵐暗 (강남소우다남암)
鏡水如綾極望平 (경수여능극망평)
十里海棠春慾晩 (십리해당춘욕만)
半天飛課白鷗聲 (반천비과백구성)

호수의 물결이 얼마나 잔잔했길래 비단 같다 하였을까? 저녁 안개가 호수 위를 덮고 있어 더욱 그리 느꼈으리라. 비 그친 후 맑은 공기는 이 아름다운 정경에 더 큰 흥을 더해주었음이 틀림없다.
진주(晋州) 기생 승이교(勝二喬)의 한시에도 사창(紗窓, 갑사 천을 바른 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원래 사(紗)란 생견(生絹, 삶지 않은 명주실)으로 짠 가벼운 명주천을 뜻하였으며, 창호지 대신 이런 천으로 바른 창문을 사창이라 불렀다.

.....
달 밝은 사창가에 온갖 벌레 울어대고
쓸쓸한 방에 홀로 누어 잠 못 이루어라.

紗窓月白百蟲咽 (사창월백백충인)
孤枕衾寒夢不成 (고침금한몽불성)

청명한 가을밤 사창을 환히 비추며 가을 달이 찾아든다. 꿈속에서라도 만나고픈 임 계신 곳을 향한 마음. 그리 곱던 내 모습도 가는 세월 못이기니, 임 향한 간절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 기생의 유명한 시 <추회>(秋懷)를 방문하기 바란다.
이상이 시에서 만난 비단은 잔잔함과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세속을 떠난 듯한 승화된 감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화려하고 번뜩이는 비단의 값어치는 동양을 넘어 서구에서도 그 귀함을 인정받아왔다. 그러기에 '비단' 이라는 시어는 여러 얼굴로 여러 시에 나타난다.

비단(緋緞) 이라는 한자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31992;)은 실이나 보통의 실이 아니고(非), 등급을 따질 수 없는 최고의 등급(段)인 귀한 실(&#31992;)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우스꽝스러운 나만의 해설을 해보기도 한다.
중국의 한대(漢代)에는 중국과 서역 간의 가장 귀히 여겼던 교역품이 한나라의 비단이었으며, 금과 같이 귀하다고 하여 한금(漢錦)이라고 이름에 금(金)을 붙여 사용했고, 그 교역료를 실크로드(silk road)라 부르게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비단이 사용되었고, 처음에는 왕족을 비롯한 귀족들만 비단옷을 입었다고 한다. 중국의 주(周)나라 시절에는 발달된 염료 기술 덕분에 아름답게 염색된 비단이 많이 생산된 모양이다.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는 비단 생산을 중시하여 직금방(織錦房)과 별금방(別錦房) 등의 관청을 두어야 할 정도로 금직(錦織)이 중요하고 또한 번성하였다. 양잠업이 한반도에 도착한 때는 대략 기원전 200여 년으로 보고 있다. 현재도 세계에서 중국이 비단을 가장 많이 생산하며, 인도, 우즈베키스탄, 브라질, 이란, 타일랜드, 베트남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명주실 재료인 누에고치. 화려하고 번뜩이는 비단의 값어치는 동양을 넘어 서구에서도 그 귀함을 인정받아왔다. 그러기에 '비단'이라는 시어는 여러 얼굴로 시에 나타난다. (연합뉴스)


섬유에는 면, 베, 모, 견 등 천연섬유와 아크릴,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으로 대표되는 합성섬유와 천연섬유를 화학적으로 구조를 일부 변형시킨 반합성섬유로 대별한다. 천연섬유 중 면직물은 흡습성이 매우 우수해 우리나라 여름철처럼 습할 대나 땀을 많이 흘릴 때 선호하지만 염색이 잘 되지 않고 섬유의 강도가 약한 단점이 있다. 그러나 목화 솜으로부터 얻는 면은 지금도 가장 선호하는 섬유다. 면의 화학 조성은 셀룰로오스로 그 구조 단위가 녹말과 같은 글루코스(포도당)로 되어 잇지만 이들 단위가 길게 결합하는 양상이 다르다. 여기에 커다란 신비스러움이 담겨 있다. 우리는 녹말을 소화시킬 수 있으나 목화나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는 소화시키지 못한다. 비록 구조 단위는 같지만.....그렇지 않닸다면 나무나 나뭇잎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천연섬유로 비단실과 양모가 있다. 이 두 종류는 단백질 섬유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우리가 경험하듯이 그 특성이 매우 다르다. 비단실로 짠 견직물은 신축력이 양모에 비해 작으며 보온력도 떨어진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단직물의 아름다움을 모직물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왜 유사한 단백질 섬유직물들인데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이해하려면 꽤 많은 화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살펴보자.
단백질은 아미노산 단위가 수백, 수천 개가 연속적으로 결합한 매우 큰 분자들이다. 견사와 양모에 덧붙여 우리의 근육과 피부는 물론 동물의 살, 콩 및 달걀의 주성분이 모두 단백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다양한 단백질의 화학 구조를 살펴보면 조금씩의 차이밖에 없는 아미노산 20가지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의 기초 성분은 20가지로 그들이 얼마나 들어 있고, 또 어떤 순서로 결합하는지에 따라 단백질 분자가 다른 성질을 갖게 된다. 물론 단백질 분자 하나의 특성에도 차이가 있지만, 조성과 구조가 다른 이 단백질 분자들이 또 어떻게 모여 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성질의 차이가 나타난다.
이 정도 배경 설명을 뒤로하고 비단과 모직이 왜 다른지 다시 돌아가자. 우선 비단을 만드는 견사 단백질과 모직을 만드는 양모 단백질은 그 조성, 즉 20가지 아미노산의 함량에 큰 차이가 있다. 또 단백질 분자들이 정돈하고 있는 3차원 구조도 크게 다르다.
견사 단백질에는 단백질 분자 사슬들이 마치 병풍을 만드는 것처럼 이웃하고 있으나, 양모 단백질에서는 나사선 모양을 한 분자들이 이웃하고 있다. 이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왜 비단은 신축성이 좋지 않고 양모는 잘 늘어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사선 구조는 외력에 의해 늘어나 풀려 병풍 구조로 되려 한다.
이 두 단백질 섬유 사이에 또 다른 큰 차이점은 촉감에 있다. 비단의 촉감은 매끄럽고 부드러워 상징적 의미로 시(詩)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모직은 그렇지 못하다. 모직은 피부를 자극해 따갑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모직 대신 촉감이 좋은 아크릴 섬유 제품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직조 기술은 이 단점을 많이 보완할 수 있으며, 요즈음 모직 양복의 매끄러움은 옛 시절 제품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근보적 차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견사의 표면은 본질적으로 매끄럽게 생겼으나, 양모 섬유의 표면은 껄끄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단옷을 입고 다닐 때 나는 사뿐걸음을 연상시키는 소리와 비단 천의 영롱한 광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두 현상이 비단의 고급성을 더해줌에 틀림없다.
견사의 단면과 모사의 단면을 비교해보면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견사는 대략 세모의 프리즘 같은 모양인데 양모사는 특징 없는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비단 옷을 입고 걷노라면 각진 견사 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이 마찰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섬유가 원형인 모사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이들 섬유의 모양상의 차이 때문에 빛이 천의 표면에 부딪힐 때도 완전히 다른 현사을 보여준다. 견사는 프리즘 같기 때문에 입사광을 여러 각도로 굴절시켜 영롱하게 보인다. 파장이 다른 빛은 같은 매질을 지날 때도 굴절각(률)이 다르다. 어렸을 대 프리즘으로 햇빛을 파장이 다른 무지개 빛을 나누던 실험을 지금도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둥그렇게 생긴 모사는 이렇게 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을 옛 선인들이 알리 없었겠으나 그들은 이런 차이가 주는 이점을 최대로 이용하였으니, 그 경험과 지혜 또한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비단에 얽힌 역사 이야기 둘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유럽 전역으로 비단이 퍼진 후 16세기에는 프랑스 리옹에서 비단사업이 번성했고, 19세기 말까지 세계 비단시장을 프랑스가 장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세기 말 프랑스에 누에가 병들어 죽는 재앙이 찾아들어 프랑스 비단산업이 크게 위축될 수 박에 없었다. 인조비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던 중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 샤르도네는 인조비단을 출품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인조비단을 만든 재료가 큰 문제였다. 샤르도네는 셀룰로오스(면)를 질산과 반응시켜 만든 질산셀룰로오스(혹은 니트로 셀룰로오스라 부른다.)를 사용하였다. 셀룰로오스는 용해성이 없으나 질산셀룰로오스는 유기용매에 녹아 방사하기가 쉬웠고 실과 천의 촉감도 천연비단과 유사했다. 질산셀룰로오스는 인화성이 강하다는 것을 샤르도네는 모르고 있었는지 그는 이 인조섬유를 시판까지 하였다. 사실 질산셀룰로오스는 폭발성이 강해 면화약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샤르도네는 질산과의 반응정도를 조절하였겠으나, 옷감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질산셀룰로오스 옷감의 촉감에만 신경을 썼던 모양이다.
20세기 들어 일본의 비단산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1930년대에는 미국 비단시장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30년대 말에 미국 뒤퐁사가 캐러더스 박사의 발명품인 나일론을 시판하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로 시장을 점령해갔고, 따라서 미국과 일본 사이에 무역 전이 펼쳐지기에 이르렀다. 합성섬유인 나일론이 비단을 급격히 대체하게 되어 일본의 비단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나일론(Nylon)이라는 이름 자체를 일본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보았던 모양이다. Now, you lousy old Nipponese!으 첫글자를 모으면 바로 Nylon이 되기 때문이다. 비단 어디 이뿐이었겠나.
역시 비단은 현대인보다 옛사람들이 더 좋아했던 모양이다. 물론 예전에는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레이온 섬유들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도 비단은 이들을 제치고 섬유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끝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취하여 부벽정에서 놀다)에 비단이 표현 속에 끼어 있는 몇 줄을 옮겨본다.
주인공 홍생(洪生)이 평양의 명소인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을 내려보니 달빛은 바다처럼 넓게 비추고 물결은 흰 비단처럼 이끌듯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홍생의 시를 들은 한 여인이 자기 시녀를 시켜 다음 시를 홍생에게 건넨다.

부벽정 오늘 저녁 달빛은 더욱 밝구나
한없는 맑은 얘기 느낌이 어떻더냐
희희한 나무 빛은 푸른 일산(日傘)처럼 퍼져있고
고요히 이는 강물은 흰 비단을 둘렀는듯
......

금수산(錦繡山) 앞이러냐 강산도 가려하구나
단풍은 붉은 채로 옛성을 비춰주고
........

이어 이 여인은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이라는 시를 지어 홍생에게 주고는 천상으로 사라진다. 이 아름다운 시 속에도 "찬란한 비단 병풍 수놓은 채 휘장 치고...."에서 비단을 시어로 쓰고 있다. 위의 '금수'는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비단은 우리의 문한적 표현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여기에 싣습니다. 편집 머슴)

첨부
비단과학(6).JPG
비단과학(9).JPG

진정일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과학문화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