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6-03-25 (Vol 3,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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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한 번 더 물어보자! : 현장교사로서 스스로에 던지는 작은 바람 하나.

3월 초, 초등학교 6학년 교실.

-교사: 여섯 번째는 ‘지진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지진이 왜 일어나는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를 조사해보는 거야.
-아이들: 네.
-교사: 그런데 말이야, 옆 반에서 보니까, 이렇게만 하고 마는 사람이 있더라고. 지진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가 했더니, “땅이 흔들려서 그렇다.”라고만 쓴 거야.
-아이들: (모두 웃는다.)
-교사: 왜, 왜 웃어?
-진호: 땅이 왜 흔들리는지를 알아야죠.
-아이들: (다시 웃는다.)
-교사: 하하. 그래. “땅이 흔들려서 그렇다”라고 하면, 우리는 또 궁금해지는 것이 있지? 무엇 때문에 땅이 흔들리는가 하는 것이지. 그래서 다시 물었더니, 이번에는 “지각이 흔들려서요.” 그러는 거야.
-아이들: (모두 웃는다.)
-교사: 하하. 그래. 이번에는 또 뭐가 여전히 궁금하지?
-효진: 지각이 왜 흔들리는가요.
-아이들: (다시 웃는다.)
-민석: 지각이 뭔지도 알아야죠.
-교사: 그래. 그렇지. 그래서 이 여섯 번째는 말이야, 너희가 궁금한 것이 최대한 해결될 수 있도록 알아보는 거야. 지진이 발생하는 원인을 말이야.
-효진: 최대한이요?
-교사: 그래. 궁금한 것이 해결될 때까지 말이야.
-아이들: 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깊이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의미 있게 와 닿는 과학 지식을 구성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The Pupil as Scientist?" 의 저자 Driver(1983)는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시간을 줘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 시간은 정신없이 실험활동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도 아니고, 실험을 마치고 실험실을 청소하는 데 보내는 시간도 아니다. Driver가 보기에, 아이들에게는 과학자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생각을 비교하면서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지식을 구성해나가는 토론과 반성적 사고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활발한 토론과 반성적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이들은 주어진 문제 상황의 해결에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는 마치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할 얘기가 없다는 표정이고, 어떤 아이들의 경우는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또, 어떤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아끼는 표정이다. 왜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 것일까? 혹, 아이들에게는 ‘이 정도면 된다.’라는 선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그 선까지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그 선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하면서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어떤 아이들은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으면서도, ‘너는 그 정도도 모르냐?’라는 친구들의 눈빛 걱정에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이 정도면 됐다’라는 선은 비단 아이들에게서만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선의 존재를 예견하게 하는 대화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예를 들어, 눈이 많이 온 날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장면을 보면서 “왜 도로에다 열화칼슘을 뿌리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보자. 어떤 이는 “염화칼슘이 눈을 녹이거든.”이라는 설명에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염화칼슘은 소금하고 성분이 비슷하거든. 그런데 소금을 뿌리면 눈이 녹잖아. 그래서 좀 더 값이 싼 염화칼슘을 뿌리는 거지.”라는 설명을 듣고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눈이 녹는 기작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는 점만 봐도 두 가지 경우 모두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 정도의 설명이면 나나 네가 만족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아도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선의 존재를 필자는 초등 과학수업 시간에 종종 경험한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은 왜 생기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6학년 아이들은 “지구가 돌기 때문이에요.”라고 잘 대답한다. 하지만, “그런데 지구는 왜 돌죠?”라는 질문을 던지는 아이는, 적어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왜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에 상당수의 6학년 아이들은 “그야, 온도가 변하기 때문이죠.”라고 답한다. “그런데 온도가 변하는 까닭은 무엇이죠?”라는 질문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그 단원의 학습에 좀 더 열의를 갖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지진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면, 많은 아이들은 “땅(혹은 학원 등에서 ‘지각’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경우에는 ‘지각’)이 흔들려서 그런 것이죠.”라고 대답한다. 사실, 꿩이 적을 만났을 때 땅속에 머리를 파묻어 버리는 것처럼, 내가 별다른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그 정도 선에서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첫째, 이러한 만족이 사실은 만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것처럼 착각하고 넘어가는 것이고, 둘째, 이러한 만족이 탐구의 유발을 방해한다면, 이것은 과학교육의 현장에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의문에 충실하지 못하고,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착각을 습관적으로 일으키면서 탐구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착각일 수 있으며 자신은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어 그 의문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일화는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최근 경험한 것이다. 6학년 과학과 ‘지진’ 단원을 수업하면서 지진에 관한 보고서를 써보라고 안내해주는 가운데 일어난 일화이다. 많은 아이들은 지진의 발생 원인을 땅이 흔들려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일화에서도 보이듯이, 교사의 의도 섞인 몇 마디 말이나, “또 궁금해지는 것이 있지 않나?”라는 식의 질문에 아이들 스스로가 ‘땅이 흔들려서’라는 대답은 만족스러운 설명이 아니며, 또 다른 의문을 유발한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냥 ‘땅이 흔들려서’라고 설명하고 넘어갔었을 아이들이 또 다른 의문을 가지고 임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가끔 위의 일화와 같은 방식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필자의 일천한 능력으로 인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설명이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하지는 않니? 네가 궁금해 하던 것이 정말 다 해결되었니?”라는 방식의 질문을 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방식의 대화가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연구를 통해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이런 방식의 대화를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과학수업의 현장에 있으면서 갖게 된 필자의 개인적인 작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물어보자. 혹시라도 아이들이 ‘의문이 해결되어서 만족스럽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라면, 이를 일깨워 주자. 그래서 스스로의 의문에 좀 더 솔직하고 충실하게 하자. 이렇게 된다면, 아이들은 좀 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앎을 위해 탐구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현장교사로서 스스로에 던지는 작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첨부
웹진원고(한 번 더 물어보자_정용재).hwp

정용재, 서울탑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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