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03-25 (Vol 4,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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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학 학위논문 요약과 종합해설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문화의 식민지성 - 국립과학관사(國立科學館史)를 중심으로-

(박사학위 논문요약)

이 논문은 국립과학관의 역사를 통해, 일제에 의해 이식된 식민지 과학기술과 이것이 탈식민화된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한국에 과학관이 처음 설립된 것은 식민지시기였던 1920년대 후반이었다. 은사기념과학관이란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세워진 과학관은 해방이후 국립과학박물관으로 개칭되었다가 1950년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후 1970년대 국립과학관이 재건립되었고 1990년대 국립중앙과학관, 국립서울과학관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이식된 과학관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낳았다. 첫째 과학관이 정치권력의 선전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식민지 과학관의 건축, 전시, 운영의 모든 면이 공공연하게 권력의 정책방향을 선전, 옹호하고 그것이 '개발', '발전'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심었다. 둘째 식민지 과학관에서 과학기술은 '결과'와 '도구'로 취급되었다. 일제는 과학이 사회적 위기를 해결했던 역사적, 문화적 산물임을 부정하고 '도구적 합리성'만을 증대시켰다. 셋째 식민지 과학관에서 다루었던 과학기술은 매우 수준 낮은 것이었다. 생활의 과학화를 내세우며 교육했던 것은 근대적 규율을 내면화시켜 권력이 요구하는 노동자형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0년대 국립과학관과 은사기념과학관 사이에는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은사기념과학관은 전쟁통에 사라지고 새로운 국립과학관이 식민지 과학관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채 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도형 근대화과정에서 '전 국민의 과학화운동'이 등장하고 이것의 선전수단으로 국립과학관이 주목받게 된 것은 과학관의 식민지적 잔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과학관이 순수하게 과학교육과 연구기관으로 기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탈식민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과학관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된 형태로 출범하였던 것이다. 국립과학관은 '전국민의 과학화'와 같은 관제운동에 동원되었고 '중화학공업기지'를 전시하며 정부정책을 선전하였다.

과학관을 통해서 본 한국 과학기술문화의 식민지성은 지금까지 한국 과학기술문화가 정치권력에 의해 강제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자생력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관을 이용하여 식민주의를 심었고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을 펼쳤으며 여기에서 과학관은 실행조직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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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최동식(고려대 화학과), 정태헌(고려대 한국사학과)
학위취득일자: 2005년, 2월 25일
고려대학교 대학원 과학기술학협동과정 과학사전공, 이학박사

첨부
논문 요약_정인경.hwp

정인경,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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