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07-25 (Vol 4,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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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전도연의 선택이 옳았다

지난 주에 나는 프랑스 칸에 있었다. 해마다 5월이면 영화제가 열리고 월드 스타들이 줄지어 나타나 레드 카펫을 밟는 곳 말이다. 그런데 칸은 또한 광고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5월에 시작된 영화제가 열흘간의 행사를 끝내고 막을 내리면 한 달 후 이 도시는 새 손님을 맞는다. 6월 셋째 주부터 일주일 간, 전 세계에서 출품된 광고들이 크리에이티브를 놓고 일합을 겨루는 것이다.

칸 광고제에서의 수상은 광고인 개인의 명예인 것은 물론이고, 해당 광고회사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브랜딩(Branding)하는 기회가 되므로 세상의 모든 광고회사들은 칸에서 상을 받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한국 광고는 지금까지 칸에서 별로 주목 받지 못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한 달 전 바로 그 무대에서 세계적인 여배우로 거듭난 전도연의 힘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전도연의 영화제 수상 이후 그녀의 수상 비결을 말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그녀가 오랫동안 ‘사이드 잡(side job)’에 고개 돌리지 않고 ‘본질’에 충실했었다는 분석이 내게는 설득적이었다.

그녀는 광고에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는지도 모른다. 광고 모델은 ‘럭셔리’한 이미지를 가졌는가가 중요한데 그녀는 이 대목에서 별로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미지가 곧 돈이 된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았던 걸까. ‘밀양’의 엄마, ‘너는 내 운명’의 ‘다방 레지’, ‘해피 엔드’의 바람난 유부녀 등 연기자라면 도전해 봄직하지만 럭셔리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배역을 끊임없이 맡았다. 그러니 광고 쪽에서의 러브 콜은 드물었고 부수입을 올릴 기회도 많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꿈의 무대라는 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다름 아닌 그 전도연이었다.

그녀도 고심했을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는 들고, 어리고 예쁜 후배 여배우들은 자꾸 나오고, 인기가 있다 해도 얼마나 갈지 모르고…. 이런 상황이면 대개는 잘나갈 때 뭐라도 해놓고 보자는 식이 되기 싶다. 그러나 그녀는 본질로 승부를 걸었다. 어릴 때 반짝 하다가 사라지는 스타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길을 택했고, 올해 그 선택은 크게 보상 받았다.

미래가 불안하고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유혹은 배우들만 받는 게 아니다. 기업들도 장기 계획보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다. 경영자건 실무자건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니까.

그래서 광고주들은 광고 회사에 점점 더 자극적이고 ‘화끈한’ 광고를 원하고 한방에 모든 걸 해결하는 광고를 주문한다. 그러나 기업의 모든 마케팅 활동이 결국은 브랜드로 귀결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런 주문은 현명하지 않다. 브랜드 자산이라는 말 그 자체가 명명백백하게 말해주듯이 자산이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게 결코 아니며, 투여되는 시간과 비례해서 가치가 쌓이는 것이니 말이다. 즉 시간은 돈이기도 하지만 힘이기도 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결코 그 위력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인생의 오묘함이지만.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신입사원으로 같이 출발한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 누구는 저만치 앞서 가고 누구는 대열에서 멀어진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나는 시간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차이에서 길이 갈린다고 믿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질로 승부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서 길이 나뉜다고 믿는다. 당장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다른 데 눈 돌리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본질의 가치를 믿는 자가 브랜드건 사람이건 오래 살아남아 파워를 갖는 법이다. 칸의 여왕, 전도연처럼.

첨부
아침논단(전도연의 선택이 옳았다).hwp

최인아, 제일기획 전무.광고 카피라이터
조선일보 <2007.6.2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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