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

2007-07-25 (Vol 4, No 7)

로그인 | 웹진 | 한마당

먼젓글  |  다음글  |  차례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교육의 실제

도량형(度量衡) 통일

중국에서 度量衡(도량형)을 처음으로 통일한 제왕은 진시황이지만 이를 처음 만든 인물은 예수이다. ‘사기(史記)’ 역서(曆書) 주석은 “예수가 산수를 만들었다”고 전하고, ‘후한서’ 율력(律曆)조는 “예수는 황제(黃帝)의 신하이다”라고 전하는데, 漢族(한족)의 시조인 황제가 동이족의 시조인 치우(蚩尤)와 싸울 때 이미 도량형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문란해진 도량형을 진시황이 통일한 것은 제국을 단일한 가치와 기준으로 다스리고 싶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역대 군주들이 도량형 통일에 나선 주요 동력이었다.

‘만기요람’ 재용(財用) 편은 세종이 동(銅)으로 만든 척(尺)을 군읍(郡邑)에 나누어 사용케 함으로써 도량형을 통일시켰다고 전한다. 그 후 도량형이 혼란스러워졌는데 영조 26년(1750) 삼척(三陟)에서 세종 때 만든 포백척(布帛尺)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다시 자를 만들어 중외(中外)에 반포했다. 그러나 이덕무(李德懋)가 ‘청장관전서’ 월령(月令)조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도수(度數)가 모두 엉망이어서 척도(尺度)·양형(量衡)이 집집마다 다르고 저자마다 다르다”고 비판한 것처럼 도량형 통일은 쉽지 않았다.

도량형 통일이 민간에게 필요한 이유는 사기 행위 방지 때문이다. ‘연려실기술’ 주척(周尺)조에서 “법도(法度)가 한결같아야 민심도 하나가 되어 사기행위(詐僞)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법도를 한결같이 하는 길은 율(律·형벌)과 도량형(度量衡)을 동일하게 하는 길밖에 없다”라고 적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같은 책은 또 “온 나라 안이 그 제도에 털끝만한 차이도 없게 하여 비록 어린이를 시장에 보내더라도 속이고 협잡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국이 坪(평), 斤(근) 등 비법정 계량단위 사용 단속에 나서면서 ‘형’ 등으로 병행표기하는 것까지 강하게 제재한다는 소식이다. 제국을 동일한 가치와 기준으로 다스리려는 제왕의 의지 때문도, 사기행위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 방지를 위한 것도 아닌 것 같기에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조선일보 2007.7.9.

과학문화교육연구소